학생 때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 주변에서 영향력을 가진다. 요즘 말로는 '인싸'라고 한다.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했지만 학교라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친구를 사귀었다. 그리고 무난한 학교 생활을 영위했다. 그렇게 사귄 친구들과는 단둘이 있으면 어색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단체로 만나는 게 아니라면 단둘이서는 절대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내가 어색해해서일까 친구들도 나랑 단둘이 있으면 어색해했다. 그래도 친구들이 있음에 만족했고 친구들이 있어 든든했다.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교에서도 다른 점은 없었다. 동기들과 어울리기 위해 함께 여행도 가고 술도 마시며 친목을 다졌다. 그렇게 많은 추억이 쌓이니 고향 친구들보다도 더 두터운 우정을 나눴다. 이런 게 진정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우정 위기가 왔다. 맞다. 우리는 모두 군대로 끌려갔다. 거기서는 2년간 서로 연락을 하지 못했다. 간간이 학교에 남아있는 친구를 통해 생사를 확인할 뿐이었다. 하지만 대학교 친구들과는 군대를 전역하고도 두터운 우정을 과시했다. 마치 어제까지 술 마시고 헤어진 친구처럼 익숙했다. 우리는 운명인지 취업도 경기도와 서울로 하게 되어 모두가 함께 상경했다.
하지만 고향 친구들은 모두 지방에서 취업했다. 그들과 나는 더욱더 만날 일이 없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진정한 친구는 대학교 친구들이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날의 결정을 후회한다.
우리는 항상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간다.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남의 시선은 더욱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유행을 따라가며 자신을 유행에 맞추고,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평가한다. 이런 현상 때문인지 우리가 속한 집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위에서 말했듯 대학교 친구들 대부분이 서울에 취업했고 나는 경기도 권에서 취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한 달에 한번 겨우겨우 보는 정도이다. 그래도 즐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몇 년이 쌓이다 보니 예전에는 같은 생각을 하던 친구들이 이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자기들끼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추억을 공유하지만, 나는 정작 그 추억에서 빠져있다. 그래서 점점 다른 사람 취급받고 그 스트레스에 만나도 즐겁지가 않다 보니 친구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스트레스받는 말이 있다. "서울 좀 자주 와!", "너는 왜 서울 올라오면 나는 안 보고 가냐 서운하다."
나는 몸이 하나인데 주말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어떻게 그 많은 친구들을 다 보고 가겠는가. 친구들에게 하소연해 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그냥 서운하단다. 그렇게 내가 보고 싶으면 지방으로 내려오라고 말해봐도 소용이 없다. 그들은 서울에 뿌리라도 내린 듯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이젠 나도 서운하다.
예전엔 대학 친구들과는 관심분야를 공유하고 앞으로 취업할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하지만 지금은 떨어져 있다 보니 전혀 다른 관심분야에서 살고 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걸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처음에 나는 내가 유행에 뒤떨어진 거라 생각해 맞춰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만만한 사람이 되었고, 점점 무리의 최약체가 되었다. 그런 내가 나도 싫어져 결국 나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타인의 시선을 한번 신경 쓰니 거기에 맞춰 살 수밖에 없었고, 결국 행동에서도 말에서도 오버를 하게 된다. 그렇게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싫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항상 나에게는 너는 틀렸고 우리가 맞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 이야기에 나는 정말 많은 상처를 받았고, 한 사람 바보 만드는 게 이렇게 쉽다고 느꼈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이 쌓였고, 스트레스만 받는 만남을 줄이기로 했다.
계속해서 상처 주는 사람들을 사포라고 생각하시오.
나를 긁어대며 상처 입히겠지만, 결국 당신은 윤이 나고 그들은 쓸모없어질 것입니다.
-크리스 콜퍼
그저 속해있다고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나를 후회한다. 우린 그저 필요해 의해 뭉쳐있었고, 서로 비교하고 물어뜯기 바빴다. 지금은 대학교 친구들의 소식만 간간이 듣지만 그 관계에 돈독함은 보이지 않는다.
나의 실수에도 옆에 남아준 고향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서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해댔다. 나는 그를 귀찮아했지만 그는 나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내주었다. 그 친구와의 첫 만남이 기억이 난다. 목포에서 전학 온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나의 명찰을 보더니 이야기했다. "어? 너 우리 아빠랑 이름 똑같네?" 이게 우리가 친구가 된 첫 한마디였고 지금까지도 돈독한 사이를 이어가고 있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진정한 친구의 의미는 모르겠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터놓고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친구를 한때 무시했던 나의 행동을 후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