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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진 Feb 25. 2024

서로 대화하고 이해했더라면 달라졌을까?




'대화가 단절된 가족들'


우리 집안은 무뚝뚝한 경상도 집안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가 없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가장은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며 돈을 위한 인생을 사셨고, 어머니는 사랑이 필요한 여자였다. 그리고 나는 '멍'과 함께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동생은 조금 아팠다. 하지만 우린 그 누구도 동생을 챙기지 않았다. 일 때문에 항상 늦게 집에 오시던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없으면 네가 이 집안의 장남이야. 그러니 동생과 엄마를 잘 챙겨야 한다." 하지만 어렸던 나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던 것일까. 나는 그냥 '멍'과 함께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동생은 그렇게 외롭게 아팠다. 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맞벌이를 하시겠다고 마트로 일을 나가기 시작하셨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못마땅해했다. 그렇게 둘은 점점 더 멀어졌다. 이제는 어머니도 집에 늦게 오시기 시작했다. 직장 회식이라고 했지만, 어른이 된 내가 지금 생각해 보면 회식이 너무 잦았다. 어머니 아버지가 집에 늦게 오시니 나도 친구와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동생은 넓은 집에서 혼자 더욱 외로워졌다. 아무도 동생을 챙기지 않았다. 아니 누군가는 챙기고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 대화하지 않았다.


 



'각자 품고 있었던 이야기'


사건이 터졌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니 아버지가 얼굴을 붉히며 어머니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 앞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어머니가 있었고 집에 있어야 할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 누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상황 파악이 끝나자마자 무서운 눈으로 아버지가 나에게 쏘아붙인다. "너 알고 있었어? 똑바로 말해! 거짓말하지 말고!!" 그렇게 화내는 아버지는 처음 봐서 그런지 나는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는 내가 알고 있었다고 착각을 한 모양이다. "너마저..." 장남의 배신에 더욱 충격을 받으셨는지 그 분노가 나에게로 몰려왔다. 나는 잠시 동안 아버지의 분노를 감당해야만 했다. 너무 아팠다. 조금 이성이 돌아온 아버지는 나에게 동생을 데리고 나가있으라고 한다. 동생이 집에 있었다는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그리고 방구석을 들어가니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책상 밑에서 조그마한 몸을 웅크린 채 울고 있는 동생이 보인다. 그때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 눈물은 내가 아파서 흐르는 건지 동생에 대한 연민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동생과 밖으로 나온 나는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우연히 어머니의 휴대폰을 본 동생이 아버지와 이야기가 하고 싶어 어머니가 다른 사람과 문자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바로 집으로 달려왔고, 동생은 자신 때문에 엄마 아빠가 싸우고 있고 아무도 자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또 혼자 일 거라고 말하는 동생에게 형이 옆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매일 동생을 다독였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날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어머니는 침대에만 누워서 매일을 우셨다. 나는 동생을 위해 매일 집으로 들어갔지만 솔직한 심정은 나도 집을 나가고 싶었다. 집에서는 울음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적막하고도 슬픈 소리가 듣기 싫어서였지 나는 어머니도 위로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어머니는 돈이 최우선인 아버지 때문에 외로웠다. 어머니도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였다. 그렇게 말하고 미안하다고 우시는 어머니의 등을 두드려주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 4일쯤 지났을 때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와 고깃집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부자지간 마주 앉아 이야기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에게 술을 따라드리며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어색함이 올라올 때쯤에 아버지는 나에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나는 내가 열심히 돈만 벌면 가정이 행복할 줄 알았어. 하지만 너의 엄마라는 사람은 그 돈으로 다른 남자와 희희덕거리고 있더라. 내 청춘 다 바쳐서 너희를 위해 노력했는데 돌아온 게 이거라니..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지는 것 같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열심히 술을 따라드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누가 잘못했다고 이야기하기도 그렇다. 우리는 그저 서로 대화하지 않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함께 살아갈 자격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우리'


나는 그때의 나를 후회한다. 아버지의 말처럼 내가 어머니와 동생을 챙겼더라면 조금 다른 결말을 봤지 않을까? 지금의 우리는 다 각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는 이제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를 단절했지만, 나와 동생에게는 여전히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다. 그렇기에 활발하게 소통한다. 안부를 묻기도 하고 함께 밥과 술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이게 진정한 가족이란 걸 가정이 없어지고 난 후에야 느끼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했는가? 우리는 이런 외양간이라도 고쳐보려고 한다. 지금의 따스함이라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외양간을 짓게 된다면 절대 잃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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