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진 Feb 16. 2024

'멍'하니 보낸 나의 인생




'멍하니 보낸 나의 청춘'


반항이라고는 1도 모르던 순하디 순한 어릴 적부터 이 말을 들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 가야지!"

내 성격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공부에 전념했다.

그렇게 나는 SKY 대학에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 되었다.

봄 한정으로.

SKY 대학의 벚꽃은 유독 이뼜고 나는 매년 벚꽃을 즐기러 대학교를 방문했다.

그저 봄철만 되면 돌아오는 철새가 된 듯이 기웃거렸다.

그렇다 나는 SKY 대학을 가지 못했다.

지방러가 된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어른들의 필승 공식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는데 왜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일까.


어릴 적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다.

특히 역사를 좋아했는데 역사책의 지도를 멍하니 바라보면, 내 머릿속에서는 우람한 말을 타고있는 근엄하고 위엄있는 장군과 그에 걸맞은 용맹한 군대가 오와 열을 맞추고 걸어가는 모습이 재생되었다.

또 구름이나 석고 보드, 나무의 문양을 보고는 특정 캐릭터를 떠올리며 그와 대화하는 듯한 플레이도 가능했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은 너무 좋았다.


오늘도 나는 멍~ 하니 내 머릿속의 비디오를 재생시켜 놀고 있다.

하지만 선생님의 눈에는 스펀지처럼 지식을 흡수하는 영특한 아이로 보였나 보다.

"수업 태도가 너무 좋아~ 이 문제 한번 풀어볼래? 다 이해했지?"

당황스럽다.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저 황당한 문자는 무엇이고, 내 놀이를 방해하는 저 악당은 누구인가.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다시 머릿 속의 플레이버튼을 눌러본다. 





'멍하니 보낸 나의 청춘에게'


생각해 보면 '멍'과 함께한 역사가 참 길다.

학창 시절에는 머릿속 대하드라마 완결을 위해 현실에서는 '멍'을 때렸다.

'멍'과 함께하니 현실의 친구과 멀어졌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낮에는 '멍'과 함께하고 밤에는 '술'과 함께 했다.

밤에 만나는 '술'은 뒤 없이 화끈했고, 낮에 만나는 '멍'은 의욕 없는 물미역 같았다.

마치 '술'을 만나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겨울잠 자는 곰 같다고나 할까.

이 '멍'과의 인연은 회사생활에서도 계속되었다.

겨울잠 자는 곰은 도저히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와 함께 의미 없는 시간을 많이 보내야만 했다.

점점 '멍'에게 의지하는 시간이 늘어나니, 더 이상 내 안에 열정을 담은 무언가가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에 들어서는 나의 청춘을 후회한다.

아무 의미 없이 '멍'과 함께 보낸 나의 청춘을 후회한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따끔하게 말해주고 싶다.

머릿 속의 플레이리스트를 당장 끄고 최대한 '멍'과 멀어지라고 말이다.

너와 친한 그 '멍'은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픈 '멍'이 되어 있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