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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진 Mar 15. 2024

정직원에 목마른 계약직의 몸부림




'똑똑한 청년'


똑똑한 청년이 있었다. 요즘 이야기하는 '똑똑한 청년 밈'이 아니라 집안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빨리 돈을 벌고 싶어 했던 똑 부러진 청년이었다. 그는 한 번의 휴학도 없이 졸업을 목표로 달렸고, 장학금을 목표로 학업에 열중했기에 학점은 당연히 좋았다. 하지만 졸업이 다가오자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렇게 졸업하면 중견기업에 취업하기 힘들 것 같은데.." 누구나 가지고 있던 어학연수는 둘째치고 그 흔한 토익점수도 변변치 않았다. 이런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똑똑한 청년은 중견기업 계약직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기로 한다. 반면 똑똑한 청년의 친구들은 작은 중소기업에서 정직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 차이는 스노볼처럼 굴러가기 시작했다.




'계약직 x 계약직'


청년은 건실한 중견기업에서 계약직을 시작했다. 알바를 3개를 해도 받지 못할 돈이 다달이 통장에 꽂힌다. 중소기업 정직원으로 시작한 친구들보다 많은 돈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명함에 박힌 기업의 명판이 청년의 어깨를 한없이 솟아나게 했다.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계약직이라는 신분은 그에게 아무 타격도 주지 못했다. 똑똑한 청년이라 자부했던 그는 책임감을 가지고 직장에서 팀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허드렛일도 앞장서서 수행했다. 그렇게 팀에서도 빠르게 인정을 받았고 정직원 전환 약속과 함께 계약을 1년 연장할 수 있었다. 


똑똑한 청년이 순수한 바보 청년이 된 사건이 발생했다. 2년이란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렀고, 정직원 전환을 약속받은 전 날, 청년은 퇴사 통보를 받았다. 당연히 전환이 될 줄 알았는데 당황스럽고 회사를 순수하게 믿었던 자신을 원망했다. 원인은 코로나로 인한 인원 감축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핑계에 불과했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그는 책상을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청년의 직속 상사였던 대리님은 그에게 미안하다고 눈물을 보이셨다. 대리님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청년은 괜찮다는 말만 남기고 정든 회사를 떠났다. 


청년은 불안했다.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데 수입이 끊겼다. 나가는 고정비용은 있지만 들어오는 수익은 없다. 그 불안감이 청년을 옥죄여왔다. 불행히도 청년의 계약직 2년은 정직원 시장에서 경력으로 쳐주지도 않았다. 남은 건 경력뿐인 청년에게 신입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최악이었다. 회사의 말만 믿고 이후를 준비 못한 어리석음과 한없이 차가운 현실에 청년은 절망했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자신감이 바닥을 칠 때쯤 한 계약직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청년은 생각했다. "그래.. 돈이라도 벌면서 부족한 스펙을 준비하자" 그렇게 청년은 2번째 계약직 생활을 시작했다.




'정직원 x 갈증'


청년은 또다시 계약직을 시작했다. 계약직을 하면서 스펙도 준비했고 면접도 많이 봤지만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기 일쑤였다. 청년은 또다시 절망했다. 시장에서 나의 가치가 평가절하됐다고 생각했다. 그쯤 그의 친구들은 승진을 하고 중견기업, 대기업, 외국계 회사로 이직을 시작했다. 대학생 때 별 차이가 없던 친구들은 사회에서 그보다 앞서나간다. 뒤에 혼자 남겨진 청년은 친구들과도 잘 만나지 않았다. 친구들 앞에 나서기가 부끄러웠다. 이런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청년은 더욱 이를 갈며 더욱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이 배신이라도 한 듯 또다시 2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최종 2인, 50%의 확률을 뚫지 못했다.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 청년이다. 청년의 자존감은 더 이상 내려갈 때가 없었다. 그저 미래를 걱정하고 싶지 않았고 한 지역에 정착하고 싶었다. 그렇게 청년은 계약직을 하고 있는 회사에 자신의 성과를 정리해 자신의 상사에게 정직원으로 채용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주제넘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결과는 청년은 계약종료, 동료 계약직은 정직원 전환이었다. 청년은 또 차갑고 어두운 구직시장으로 내몰렸다. 


  


'그날의 후회' 


정면돌파가 아닌 편법으로 돌아가려 했던 똑똑한 청년의 행동을 후회한다. 아니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과 함께 했던 무지한 과거를 반성한다. 큰 회사 명판에 목숨 걸었고 중소기업은 쳐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친구들보다 늦게 중소기업 정직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건실한 중견기업에 재직 중이다. 나도 친구를 따라 중소기업부터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았다면 어땠을까. 그날을 후회해 보지만 바뀌는 건 없다. 중요한 건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좀 더 나은 하루를 위해 나아가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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