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동시에 표지판, 폐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다. 이렇게 볼 때 걷는 것은 여러 가지 풍경들과 말들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 다비드 르 브르퐁 『걷기 예찬』
'오늘도 달리는 초보 러너'
나는 머릿속이 어지러우면 공원으로 달리러 나간다. 나는 초보 러너이기에 뛰면 너무 힘들다. 나의 모습을 볼 순 없지만 아마도 나 혼자 산다에 나온 기안 84처럼 공원에서 허우적대며 뛰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힘들다 보니 그 어떠한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뛰는 동안은 온전히 주변 풍경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귀여운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사랑을 키워가는 커플, 나와 같이 운동을 위해 나온 사람들, 지금의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와 풀들, 격렬하게 뛰고 있는 나의 심장과는 별개로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이 나를 덮쳐온다. 현대의 바쁜 삶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 달리기에 푹 빠져든다. 오늘은 어떤 풍경의 길과 장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부푼 맘을 안고 신발끈을 조여 본다.
'작가에게 풍경은 글쓰기 재료'
초보 러너도 꾸준히 달리다 보면 달리기의 강도에 익숙해진다. 그쯤 생각할 여유가 생기긴다. 이때가 기회다. 얼른 생각정리가 필요한 주제를 가지고 와 생각을 차분히 정리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오늘 읽었던 책에 대해 사색해 본다. 한발 한발 내딛으며 머릿속에서 엉켜있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본다. 저자의 생각에 의해 부푼 나의 생각과 마음을 차분히 정리한다. 신기하게도 달리기를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우물 같다고나 할까.
이런 영감은 주변 풍경과 장면에서 많이 얻는다. 러닝 머신 위가 아닌 공원에서 뛰기에 좋든 싫든 풍경과 많은 장면에 노출된다. 이런 풍경은 나에게 촉매제가 되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도와준다. 길 가던 강아지를 보면서 어릴 적 키웠던 반려견을 생각하거나, 지금 강아지를 키운다면 어떨까 등의 심심한 상상을 하곤 한다. 공원 밴치에 앉아서 서로에게 의지하는 노년의 부부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저렇게 아름다운 사랑을 해가고 싶다는 욕망을 품기도 한다. 이런 심심한 생각들이 나에게 영감을 준다.
'뛰는 즐거움'
힘차게 땅을 박차며 대지를 밀어낸다. 눈앞의 풍경이 한 발자국씩 뒤로 밀려난다. 내 몸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풍경은 나와 반대로 간다. 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새로운 풍경이 끊임없이 눈앞에 나타난다. 새로 개봉하는 극장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풍경과 공감해 보려는 시도조차 나에게는 큰 자극이고 재미가 된다. 또 달릴 때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매서운 바람소리와 주변에서 들리는 활동적인 소음들 그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직장을 벗어나 여유를 찾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 모든 게 나에겐 즐거움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풍경이 주는 즐거움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글 솜씨가 많이 부족하지만 최대한 내가 느낀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