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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진 Mar 20. 2024

그 남자는 꽃피는 계절에 달리며 울었다


 '봄'


새해의 봄에는 나의 반쪽과 벚꽃놀이를 가고 싶었다. 따뜻한 햇살 아래 반쪽의 다리를 베개 삼아 누워 푸른 하늘에 떠있는 하얀 구름을 감상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유롭고 평화로웠던 상상과는 달리 나의 다리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대지를 박차며 앞으로 나아가면 온몸에 충격이 전해진다. 그 충격이 잠들어 있는 연애 세포들을 깨우나 보다. 마음속 깊숙이 숨겨 놓았던 연애 감정 새싹처럼 피어난다. 그리고 차가운 겨울 떠나간 나의 반쪽이 생각난다. 울컥한 감정이 몰려온다. 다행이다. 지금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나의 땀에 가려질 테니까.






'여름'


무더웠던 여름에 나의 반쪽을 처음 만났다.


에어컨 밑에서 가만히 누워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할 일 없이 놓여있던 전화에서 벨이 울린다. 친구 놈이다. 큰 실망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실망과는 달리 친구 놈은 방구석 폐인인 나를 구원하고자 소개팅을 제안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친구님이 있는 방향으로 큰절을 올렸다. 그것도 3번이나....ㅎㅎ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는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솟아졌던 날이다. 구두에 검은색 슬랙스, 네이비 넥카라 반팔티를 입고 한쪽 손에는 우산을, 한쪽 손에는 만나기로 한 여성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주위를 살폈다. 우산이 길 위의 모든 얼굴을 가려 프로필 사진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결국 나와 같이 두리번거리는 사람을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 멀리서 슬리퍼에 청바지, 하늘색 셔츠를 입은 여성이 우산을 들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소개팅에서 슬리퍼를 신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녀를 배제했다. 하지만 그녀는 보란 듯이 외쳤다.


"안녕하세요?"






'가을'


비 오는 날 슬리퍼를 신고 나왔던 그녀는 나의 반쪽이 되었다. 그녀는 행동은 항상 '톡톡' 튀었고 정적인 나에게는 항상 새로웠다. 그래서 더욱 그녀가 좋았다. 그녀를 데리러 갈 때마다 나의 심장은 뛰었고 광대는 올라가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내가 귀엽다고 말해주었다. 더할 나위 없는 연애였다.


뜨겁게 연애 초반을 보낸 우리는 100일을 기념하며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3시간이 넘는 장거리 운전에 걱정이 앞섰지만, 우리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휴. 게. 소.' 휴게소에 들러서 버터감자와 고구마 스틱, 커피를 샀다. 운전 중에 그녀가 버터감자를 나의 입으로 밀어 넣었다. 감자는 고소했지만 나의 목을 막았다. 고통을 호소하니 옆에서 시원한 커피가 연결된 빨대가 다가온다. 시선은 앞으로 고정한 채 커피를 한 모금 빨아 마셨다. 막혔던 목이 쾌재를 부른다. 지금이라면 분명 윤종신의 '좋니'를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바로 노래를 불러보았다. "좋으니 사랑해서어어어어!!!......" 결과는 처참했지만 옆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웃음을 주었다. 됐다. 그거면 된 거야.


강원도에 도착한 우리는 여행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랐다. 장거리 운전에 지치기도 했고 집돌이였던 나는 호텔방에서 쉬고 저녁에 나가길 원했다. 하지만 활발했던 그녀는 여행 와서 호텔방에 있는 게 말이 되냐며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내 얼굴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피곤함은 몰려왔고 머릿속에는 침대만이 떠올랐다. 그러다 그녀의 말을 놓치고 말았다. "어..?" 그녀가 나에게 지금 무슨 말하고 있는지 설명해 보라고 한다. 눈앞에 막 썰려 나온 활어회와 전복, 팔팔 끓는 매운탕이 맛있게 익어간다. 그리고 그녀의 온도도 급격히 올랐다. "아.. 미안.. 좀 피곤해서 멍 때렸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지만 늦었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잠에 들었다.






'겨울'


첫 여행 이후 우리는 지속적으로 싸웠다. 싸우면 정든다고 누가 그랬는가. 마음속에는 화만 쌓여갔다. 매력으로 느껴졌던 '톡톡'은 점점 철없이 느껴졌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우리는 헤어졌다. 첫 달에는 좋았다.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다. 기분 좋게 공원에서 달리고 하루종일 독서도 해본다. 하지만 점점 이상함을 감지했다. 항상 붙어있던 사람이 없으니 허전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했던 즐거운 추억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함께 야채를 썰고 고기를 굽던 주방, 밤에 두 손 꼭 잡고 함께 산책하던 공원, 차에 타면 항상 옆에 앉아 선곡을 고르던 그녀. 이 모든 것들이 이젠 없다. 나 혼자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고, 불 꺼진 공원에서 혼자 달린다. 그리고 조수석에는 먼지만 쌓일 뿐이다. 이제야 그녀가 나에게 많은 웃음을 주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나에게 그녀는 너무 소중했었다. 차디찼던 겨울. 짧다면 짧았던 연애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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