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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백조 Dec 15. 2022

We, Together

<연대와 협력의 멜로디>

연대와 협력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방법을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결국 사람 이야기이다. 원하는 바가 같더라도 사람이 여럿 모이면 아귀가 꼭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특히 ‘우리’가 아닌 ‘나’ 중심의 사회, 경쟁을 촉발하는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나의 아이는 다른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 왔다. 1등이 되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것보다는 옆을 돌아보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나누는 모습을 기대했다. 이런 이유로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팀 스포츠에 관심을 가졌다. 워낙 활동적인 성격에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에 같은 목적을 가지고 단체로 움직이는 스포츠를 배우면 자연스레 함께 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축구선수가 꿈인 아이는 축구를 배우고 싶다며 오래도록 나를 설득했다.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데 스포츠를 잠시 활용하려고 했지, 직업으로까지 커질 줄이야.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팀' 경험은 나중에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살아가는데 도움은 되겠지하는 마음이 생기니 축구가 다르게 보였다. 8명의 아이가 골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 패스를 주고받으며, 스트라이커에게 공을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함께 하는 삶을 배울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리, 처음 축구 클럽을 다녀온 아이는 능력과 경쟁이 팽배한 세계를 맛보았다. 하나의 골을 만들기 위해 협력을 한다기보다는 자신만의 현란한 기술을 보여주고, 드리블하며, 홀로 상대방을 돌파하여 골을 만드는 과정만이 두드러졌다. 사실, 대회 때 멀리서 지켜보아도 클럽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소위 최고의 자리에 있는 아이만 눈에 들어왔고, 나도 모르게 ‘와와’ 감탄사만 연신 나왔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그 아이만의 것이었다. 


아이는 안 그래도 늦게 시작한 축구로 클럽 친구들이 제대로 끼워주지 않지, 운동장에 서 있어도 공이 안 오니 쭈뼛쭈뼛하다 경기 마칠 때도 있지, 기술도 부족한데 몸동작까지 설익지. 꼭 남의 옷을 입고 운동장 머릿수만 메꾸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1살이 되면서 경쟁 사회에 발을 들인 아이를 지켜보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연대와 협력은 개뿔, 세상 고상한 소리는 혼자 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클럽에서 혼자 돋보여도 전국에 날고 긴다는 선수들을 모아놓으면 어림도 없다는 소리를 숱하게 들었다. 새로 들어온 아이 수준에 맞는 훈련으로 기존의 아이들 실력이 하향된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 그렇다면 실력을 맞추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개인레슨을 시작했더니, 개인레슨으로 아이들 경쟁을 부추겨놓는다는 소리도 들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나의 행동이 팀 내 경쟁을 일으키는 것으로 비춰진다니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았다. 


과연 나는 아이 실력을 기존 팀 친구들 수준까지만 끌어올리려고 돈을 더 쓰며 개인 레슨을 한 것이었나? 솔직히 그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잘한다고 관심 가질만한 아이로 만들어놓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지 않았나? 클럽에서 우리 아들도 최고가 되면 좋겠다는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결국, 처음에 바랐던 아름다운 연대와 협력의 멜로디는 온데간데없이 능력주의 사회에서 자란 나 역시 경쟁에서 이기자는 마음이 농후했던 것이다. 



돌아보니 살면서 연대와 협력을 배우거나 경험해 볼 기회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반장, 부반장, 선도부장과 같은 직책으로 서열 속 권력을 먼저 배웠다. 뛰어난 리더십이란 제각각인 아이들을 어떻게 일률적으로 잘 통솔하느냐와 관련 있었다. 회사에서도 피라미드 계층 구조에서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을 뿐이었다. 즉, 오늘의 동지는 내일의 적이 될 수 있고, 오늘의 동료는 내일의 상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습득했다. 


이런 환경에 오래도록 노출되어 살아왔는데, 집단생활에서 기득권 내지는 주도권을 쟁취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히지 않았을까? 그런 내가 아이에게 함께 어울러져 잘 살아간다는 것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에 생각이 거듭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도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았다. 해보지 않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가 있는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생전 찾아오지 않던 엄마를 운동장에서 만나니, 의아하면서도 신나 했다.   


- 다음 편에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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