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질문]
당신은 어떤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나요? 어떤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나요?
예전에 독서모임에서 한 가지 질문이 수면 위로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친구'의 정의와 범위에 대한 질문이었죠. 어떤 사람을 우리는 친구라고 부르는지, 그리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는 어디까지인지 이야기를 나눴던 걸 기억합니다. 그때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은 아마 5~6명 정도였습니다. 여러 의견이 오고 갔는데, 크게 세 가지 의견으로 갈렸습니다. 임의로 '엄격파', '유연파', '무경계파'로 이름 붙여 보겠습니다.
엄격파에 해당하는 의견은 "아무나 친구라고 불러선 안 된다. 친구는 정말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잘 알고 있으며,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이어야 한다"였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또는 두 명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죠. 그리고 이 기준에 따르면 친구가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친구를 만드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친구가 없는 사람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유연파는 말 그대로 좀 더 유연하게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친구가 10~30명 정도로 꽤 많았어요. 함께 알고 지낸 시간이 3~4개월 정도 되었고, 2~3번 정도 만나서 놀았다면 모두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마지막으로 무경계파에 해당하는 의견은 "우리는 모두 친구!(피카피카!)"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나고, 우리도 모두 하나라는 마음가짐이었죠. 친구냐 아니냐는 그저 나와 만난 적이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다고 말하더군요.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유연파에 해당하는 편입니다. 어느 정도 알고 지냈고, 함께 놀기도 했다면 관계의 형태나 연령대와는 관련 없이 모두 친구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다양한 친구들이 곳곳에 있는 편입니다. 독서모임도 저에겐 노는 곳이라서 모임원들 모두 저의 친구라고 여깁니다. 저보다 7살이나 많은 형의 입장에선 조금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네요. 뭐, 기분 나빠도 어쩌겠어요.
제가 유연하게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기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친구로 여기기 위해 필요한 기준은, '그 사람에 대해 내가 궁금한가?'입니다. 궁금하지 않다면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다면 굳이 함께 어울려 놀 이유도 없습니다. 함께 놀아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친구가 될 수도 없죠. 하지만 궁금증이 생기는 사람이라면 모든 게 반대일 겁니다. 궁금하니 흥미가 생기고, 흥미를 채우면서 재미를 느낍니다. 재미있으니 여러 번 어울려 놀 테고,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는 거죠.
대학생 시절에 저보다 2년 선배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학과 내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었는데, 그 소문의 주인공이었죠. 저의 동기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후배들이 그 선배를 피해 다녔습니다. 저도 경계를 했죠. 하지만 저는 낯가림이 심해 학과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딜 가나 겉돌기 시작했고, 혼자서 다니는 일이 많아졌죠. 그때 그 선배가 먼저 다가와 주었습니다. 직접 대화를 해보니 성격이 참 유순하고 유쾌한 사람이었죠. 함께 있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재주가 뛰어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문의 주인공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점점 궁금해지더군요. 결국 호기심을 참지 않기로 결정하고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소문이 돌고 있는 걸 아냐고, 정말 사실이냐고 말이죠. 선배는 덤덤하게 사실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한 게 맞고, 후회하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그리고 그 실수는 그 사람의 인격 때문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자라면서 겪었을 경험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선배는 자신의 잘못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다시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죠. 그래서 저는 선배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돈독한 친구가 되었죠.
저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나에 대해 궁금해하기도 바쁘기 때문이죠. 누구에게나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아무에게나 호기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호기심을 가지게 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는 열에 아홉 정도는 반드시 친구가 됩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궁금해하고,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질문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선배와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선배에 대해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계기도 하나의 질문이었습니다. 소문이 사실이냐는 질문이었죠. 이는 "당신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려오는 소문 말고, 당신이 직접 설명하는 당신에 대해 알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상당히 멀리까지 돌리고 돌려서 한 질문이죠. 다행히 선배는 민감하게 제 의도를 알아차렸고, 스스로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선배는 저에게도 호기심과 질문을 돌려주었고, 저는 성실히 대답을 했죠.
질문을 서로 주고받는 방법으로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단지 적절한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방법을 조금 알 필요는 있긴 하지만요. 안타깝게도 우리는 대답하는 방법만 실컷 배우고, 질문하는 법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알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게 참 많아서,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질문하고, 알려고 노력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를 새로 맺어보기가 참 어려워진 듯합니다.
어떤 형태의 지식이나 지혜든 시작은 질문으로부터 이루어집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싶나요? 지금 친구로 지내는 사람들과 앞으로도 잘 지내고 싶나요? 그렇다면 관심 있게 바라보고, 질문해 보세요. 무례하지 않게, 감정이 상하지 않게, 적절한 선을 넘지 않게, 진실되고 친절하게 질문해 보세요. 그럴 수 있다면 무경계파에 해당하는 사람들처럼 이 세상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그럴 마음만 있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