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점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좁혀지는 게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일 수도 있고, 만나는 인간관계의 폭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경험을 통해 만들어가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 그리고 삶의 기준은 경험을 반복하면서 더욱 확고해진다.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쓰기 시작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시력은 계속 나빠진다. 그러다 보면 안경 없이는 무엇도 선명히 볼 수 없게 되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자신만의 '안경'을 아주 빨리 쓰게 된다. 그리고 안경은 '제2의 눈'을 넘어, '단 하나의 눈'이 되어 간다. 그리고 안경 렌즈에 색이 덧씌워진다. 점점 짙어져만 가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기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였다. 하고 싶은 일에서 '더 늦기 전에'라는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기준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해보지 못한 경험에 대한 기준은 쌓을 수 없다. 겪어 본 경험만으로 기준을 만든다. 따라서 내가 형성하는 기준이라는 틀에는 예전에 겪어 본 경험들만이 담기게 된다. 한 마디로 '고착화'된다. 아직은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어도, 내 기준이 더 단단해질수록 새로운 경험의 필요성이 제거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틀에는 새로운 건 들어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을 위해 노력해볼 의욕은 생겨나지 않는다. 일말의 필요성도 느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적다 보니 다소 복잡하게 말을 한 것 같다. 단순하게 말하면 '나이가 들면서 고정관념에 갇힌다.'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 고정관념이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나설 의지를 뺏어, 나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고정관념이 생기는 건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고정관념에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으므로, 의도적으로 부수려 해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도움이 되는 부분은 없애고자 고려하기 어렵다. 그리고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이점을 결코 무시할 수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질적으로 가장 높은 고정관념은 '철학'이다. 자아를,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세상의 원리를 하나의 고정된 관념으로 바라보는 게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나에게 "철학을 고정관념 따위로 비하하다니, 몰상식한 사람이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를 몰상식한 사람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몰상식한 사람이 맞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네"라고 생각하며 나를 바라본다면, 나는 몰상식하지만은 않은 사람이다. 고정관념=철학으로 생각해보면 고정관념이 어째서 긍정적일 수도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정관념의 이점이란 곧 철학의 이점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발버둥 치고 싶다. '고인 물'이 아닌, '흐르는 물'이 되고 싶다. 그래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까지 '나는 못할 거야'라는 생각에 갇혀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최대한 나에게 익숙한 환경 속에서 할 일을 찾을지 고민하고 있다. 익숙함을 모두 버리고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건 무모하지만, 한 길로만 흐르는 강물에 새로운 길을 터 물길을 다른 곳으로도 흘려보는 게 필요하다.
좁히고 싶은 것
좁혀지는 걸 거부하고 싶은 마음 반대편에는, 좀 더 좁히고 싶다고 바라는 점도 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바꿔 말하면, 습관으로 들이고 싶은 게 있다. 습관도 좁혀지는 것 중 하나다. 습관이란 반복되는 패턴 안에서 머무는 생각과 행동의 묶음이다. 패턴은 고정된 틀과 같다. 즉, 좁혀진 상태다. 나는 몇 가지 습관을 들이고 싶다.
첫째, 세상을 관찰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이 습관을 들이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글감을 구하기 위함이다. 좀 더 많은 걸 보고, 더욱 많은 내 생각을 글에 담고 싶다. 세상에 더욱 큰 관심을 두며 살고 싶다. 세상을 더욱 사랑하고 싶다. 나만의 독특한 세상을 보고 싶다. 또는, 같은 걸 보더라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위해, 궁금해하고 질문하길 습관화하고 싶다.
둘째, 아침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직장을 구하게 되어 아침에 출근해야만 하게 되면, 지금처럼 정오에 하루를 시작하는 삶을 유지할 수 없다. 그때 덜 괴롭힌 위해서라도 미리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더 나아가 해가 막 떠오르는 시각에 길가의 벤치에 앉아 서서히 밝아지는 세상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셋째,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가보지 못한 곳에 가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과 좀 더 함께 있기 위해, 내 글을 오래도록 쓰기 위해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고 싶다. 식스팩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계단 몇 개 올랐다고 헥헥 대는 수준에서는 벗어나면 좋겠다.
습관을 가진다는 건 일정한 패턴에 갇히는 것과 같다. 습관이라는 틀이 오히려 새로운 행동을 하지 못하게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습관은 분명 유용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쓰이는 정신력을 아낄 수 있게 해 준다. 적은 의지력으로 좀 더 쉽게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만들어준다. 그러니 나는 들이고 싶은 습관에 관해선 좁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