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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l 10. 2021

주말을 보내는 법

게으른 백수의 주말 풍경

백수 생활 한 달 차


  백수가 된 지 한 달쯤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조금의 수입은 있어 백수가 아닐 수도 있다. 앱을 통한 심리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로 월 5~10만 원의 수입은 꾸준히 벌고 있다. 그래도 일하는 시간은 하루 30분을 넘기는 일이 거의 없고, 출근도 하지 않으니 '반백수' 정도는 인정해주시길 바란다. 결코 다른 백수님들을 기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사실 백수에겐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불가능하다. 주말이 되었다는 사실은 주말 예능이 하는 걸 보고 깨닫는다. 또는 누군가와의 약속이 보통 주말에 있기 때문에 안다. 그 사람들은 백수가 아니라서 주말에만 시간이 되니까. 비록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어린이 백수이지만, 반복되는 주말을 보내며 생체 리듬만큼은 꽤 준수한 백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일과표


  시계가 AM을 표시할 때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오늘도 눈을 뜨니 오후 2시가 넘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싶어도 나에겐 아침이 허락되지 않아서 못 먹는 현실이 슬프다. 부스럭대고 멍 때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배가 고프다. 배달 음식을 시켜먹거나 집에 뭐가 있나 뒤져보고 꺼내 먹는다. 직접 요리를 해 먹진 않는다. 뒤적이고 꺼내 먹는 건 주로 컵라면 또는 어머니가 사놓은 빵이다. 밥을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진다. 참는 건 몸에 좋지 않아서 낮잠을 잔다. 때론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졸음을 참으면서까지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게임을 한다. 


  낮잠 또는 여가시간에 집중하다 보면 금세 저녁 식사를 챙길 시간이 된다. 이쯤 해도 뉘엿뉘엿 지고 있다. 저녁까지 먹고 나면 드디어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컨디션이 좋아지는 걸 느낀다. 나의 하루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본격적으로 새로 할 신작 게임과 완결이 난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없는지 찾아본다. 1~2시간 정도 책도 읽는다. 간혹 내키면 자격증 공부도 조금 한다. 일주일 중 하루 정도는 20분 정도 간단한 맨몸 운동도 한다. 이렇게 알차게 에너지를 쓰고 나면 뭔가 할 수 있는 집중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집중력이 별로 요구되지 않는 유튜브를 보기 시작한다. 작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도 보고, 한국인이라면 구독하는 게 마땅한 그분도 찾아뵙고, 새롭게 읽을 책을 추천받기 위해 북튜브도 돌아다닌다. 게임과 애니 리뷰 채널도 빠뜨릴 수 없다.


  책을 읽거나 유튜브 세계를 모험하다 보면 글로 쓰고 싶은 주제가 잡힐 때가 있다. 한 마디로 영감이 떠오른다. 그러면 나의 취미 중 하나인 '시처럼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냥 '시 쓰기'가 아닌 '시처럼 글쓰기'인 이유는 시라고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이기 때문이다. 단 한 마디라도 깊게 고민하며 소중히 써 내려가는 시인 분들과 누구보다 진지하게 시를 배우는 학생분들에게 실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시가 되도록 노력하는 중인 글'을 쓴다고 표현하고 싶다.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한 문장에 대한 나의 생각을 쓰기도 하고, 문득 떠오른 생각을 표현해보기도 한다. 한동안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썼는데, 요즘은 일상에서 느끼는 바를 좀 더 자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새벽 2~3시쯤 성실히 하루 일과를 마치면 이제 집중력뿐만 아니라 모든 에너지가 고갈된다. 다시 잠에 들 시간이다. 이렇게 나의 하루가 끝이 난다.




석사까지 졸업하고서 백수라니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나처럼 백수생활을 하는 사람은 좀처럼 본 적이 없다.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슬프니까. 비록 지금과 같은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6월에 접어들면서여서 한 달 정도 되었지만, 올해 2월에 대학원을 졸업하고서 5월까지 제대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매달 20~3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얻는 파트타임 일을 했을 뿐이다. 취업해서 자리를 잡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초조함을 느끼곤 한다. 비록 자리를 잡지는 못했어도 다들 심리학을 놓지 않고 일을 하는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파트타임 일도 전공과는 관련성이 없는 일이었고, 심지어 그마저도 그만둔 상태이니 '이대로 괜찮은가?'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특히 상담심리를 전공한 나로선, 이 분야가 상담을 하지 않은 기간이 긴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큰 걱정이다. 걱정은 많지만 현실은 위에서 설명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취업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이마저도 열심히 한다고는 할 수 없으니 혼이 나도 단단히 혼나야 하는 상태이다.


  앞으로 언제까지 백수로 지내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늘 그렇듯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한 번 크게 데어 봐야 정신을 차릴 텐데,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어떻게든 되어 왔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글러먹은 사람은 아닌가 보다. 무려 '일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강제로 부지런해질 수 있도록 직장을 얻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물론 취업하면 하루하루 욕하면서 다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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