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음식에 담긴 마음
나는 밥보다는 빵이 좋은 사람이다. 한국인은 밥심이라지만, 내겐 밥이 가져다주는 에너지가 그리 중요하진 않다. 나는 뜨거운 걸 잘 먹지 못한다. 갓 지은 뜨끈뜨끈한 밥은, 내겐 힘겨운 상대다. 보통 반절 정도 먹어갈 때 딱 먹기 좋게 식는다. 그때까진 힘겹게 숨을 불어넣으며 식혀 먹는 게 여간 귀찮고 힘든 일이 아니다. 한참 성장기일 땐 1cm라도 키가 더 크기 위해 열심히 밥을 먹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다. 그래서 먹는 밥의 양은 점점 줄이고, 반찬 위주로 먹는다. 그리고 가능하면 빵으로 한 끼를 채우는 게 훨씬 좋다.
빵은 밥보다 간편하다. 밥을 짓는 과정보다 간단하다. 사실 직접 빵을 구워 먹진 않으니 올바른 비교는 아니다. 밥과 빵 모두 외부에서 돈을 주고 사 먹는다면, 왠지 빵을 사 먹는 게 돈이 덜 아깝다. 아무래도 밥은 집에서 직접 해 먹는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비용으로만 따지면 같은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건 빵이다. 맛있는 빵일수록 적은 양에 가격은 비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빵이 좋다. 왜냐하면 '맛있는 빵'이니까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다.
빵은 양 조절이 쉽다. 밥을 먹다 보면 그 순간의 컨디션에 따라 적게 먹기도, 많이 먹기도 한다. 많이 먹을 때는 별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적당히 아쉬울 때 숟가락을 내려놓는 게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부족한 건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밥을 남기게 될 때 문제가 생긴다. 잔반을 처리해야 한다는 문제. 음식물 쓰레기가 늘어나는 건 요리조리 생각해봐도 좋을 게 없다. 그렇다고 잔반을 만들지 않으려고 잘 넘어가지도 않는데 꾸역꾸역 먹는 건 괴롭다. 특히 나는 그때그때 식사량이 어떻게 바뀔지 나조차도 예상할 수 없다. 미친 듯이 배가 고플 때도 막상 밥을 먹으면 금방 질려버린다. 별로 배고프지 않았는데 먹다 보니 과식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반찬을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어렵다. 한 번 만들어두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냉장고에 넣어두면 될 일이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잔반이 생겨 버린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땐 더욱 잔반을 만드는 게 신경 쓰인다. 그러나 빵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반쯤 먹다 남겨도 봉지로 잘 감싸 두었다가 언제든 마저 먹을 수 있다. 우유와 함께 먹거나, 잼을 발라먹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를 주기도 쉽다. 애초에 빵은 잘 남기지 않는다.
빵에는 추억도 담겨 있다. 딸기잼을 식빵에 발라먹던 어릴 적 아침 풍경, 친구들과 빵 하나씩 입에 물고 이야기를 나누던 학교에 대한 기억, 빵을 먹으며 밥 먹을 시간도 아껴 과제하던 대학생 시절 등 빵은 아주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 해주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은 설탕을 잔뜩 뿌린 꽈배기다. 설탕이 뿌려져 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특히 찹쌀 도넛처럼 아주 쫄깃쫄깃한 꽈배기를 팔던 빵집이 있었는데, 그 꽈배기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다(참고로 없어진 건 아니다. 다만 집에서 멀어서 자주 못 간다). 쫄깃하고 달콤한 맛의 조합이 정말 환상적이다. 어찌 보면 떡으로도 이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보이지만, 떡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어 달리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이 없다.
이 꽈배기에는 지금도 내가 품고 있는 꿈이 이제 갓 생겨나던 시절이 담겨 있다. 그 빵집은 내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러 나가던 복지관 근처에 있었다. 강의를 나갈 때마다 꽈배기를 사 먹으며 힘을 얻었다. 그때 당시 청소년들과 만나며 그들에게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보람도 느끼고 즐거움도 있어 앞으로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꿈이 생겨났다. 꽈배기를 떠올리기만 해도 그 시절의 설렘이 함께 떠오른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겐 '소울푸드'라고 부를 만큼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누군가에겐 떡볶이일 수도 있고, 콩국수나 치킨, 삼겹살 등 모든 음식이 영혼을 치유해주는 소울푸드가 될 수 있다. 나의 소울푸드인 꽈배기는 분명 내 영혼을 어루만져준다.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해 주고, 추억을 떠올리며 즐겁게 해 주고, 내가 지닌 꿈을 잊지 않게 해 준다. 모든 꽈배기가 만족스러운 맛을 느끼게 해주진 않지만, 그 존재 자체로 내게 주는 기쁨이 있다. 다른 빵들도 꽈배기만큼은 아니지만 내게 기쁨을 준다. 나는 앞으로도 빵을 사랑하는 '빵돌이'로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려면 빵을 계속 먹을 수 있게 건강을 지키려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