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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an 11. 2022

사슬 끊기
-나를 묶어두는 것에서 벗어나는 법.

[학습된 무기력]

어릴 적 나를 옥죄었던 사슬


  제가 초등학생 때의 일입니다. 2학년이었던 저는 여전히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었죠. 초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용기도 나지 않았어요. 누군가 다가와주기만을 기다렸죠. 하지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고, 그러기는커녕 저를 공격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때의 거절당한 경험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저를 옭아매었습니다. 저는 늘 먼저 다가가지 못했고, 점점 다가와주는 사람도 밀어내게 되었고, 끈질기게 다가와준 고마운 사람들만이 저의 친구로 남아주었죠.


  20살이 넘어 어른이 된 후에도 마음만은 자라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어린아이였던 그때의 기억에 괴로워하며 사람을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들은 날 싫어할 거야'라고 지레짐작하며 인간관계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쉽게 마음을 주지 못했고, 언제나 상대방이 떠났을 때 덜 아프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니 늘 외로울 수밖에 없었고, '인간은 원래 혼자 살아남는 거야'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홀로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늘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가능한 잘 지내야 합니다. 그래야 생존에 유리합니다. 외로움은 씻겨 내려가지 않습니다. 마음이 추우니 몸도 아프고, 늘 무기력하게 지내게 되었죠. 우리는 혼자서는 세찬 세상의 풍파를 견뎌내기 힘듭니다. 함께 이 세상을 탐험할 동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릴 적 겪은 괴로운 경험으로 인해 무기력한 모습을 일관하게 되는 걸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주로 벼룩이나 코끼리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죠.


  벼룩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벼룩은 점프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손톱만 한 녀석이 건장한 성인의 키만큼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해요. 이 벼룩을 작은 유리병 안에 넣고 뚜껑을 닫습니다. 그러면 벼룩은 유리병을 탈출하기 위해 뛰어오르고, 병뚜껑에 부딪혀 추락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벼룩은 더 이상 뛰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뛰어봤자 소용없다는 걸 학습한 거죠. 그런데 뚜껑을 열어준 후에도 벼룩은 뛰지 않거나, 뛰어도 뚜껑에 닿이지 않을 만큼의 높이만 뛴다고 해요. 뚜껑에 부딪히는 게 두려운 겁니다. '어차피 난 여길 나갈 수 없어'라는 믿음이 생겨버린 거죠.


  코끼리의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코끼리를 조련하기 위해 아직 아기일 때 말뚝을 박아두고 코끼리 다리와 말뚝을 사슬로 묶어둔다고 합니다. 아직 힘이 없는 아기 코끼리는 그곳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지만 말뚝을 뽑아내지 못해 탈출하지 못합니다. 이윽고 아기 코끼리는 발버둥 치는 걸 포기하게 됩니다. 사슬이 팽팽해지지 않는 범위에서만 움직이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입니다. 벼룩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코끼리의 이야기에서도 이 무기력함은 시간이 지나도, 조건이 바뀌어도 지속됩니다. 이제 어른이 된 코끼리는 말뚝 따윈 단숨에 뽑아버릴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말뚝에 연결된 사슬을 다리에 묶어두면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신은 절대 말뚝을 벗어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사슬을 끊어라


  몸은 어른이 되었어도 마음만은 여전히 아이. 코끼리의 이야기는 제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아기 코끼리처럼 '외로움'이라는 말뚝에 묶여 무기력하게 현실에 안주하려 했습니다. 현실이 너무나도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제게 벗어날 수 있는 힘은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른이 되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며 분명 이전보다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초등학생 때의 나와는 달라졌습니다. 단지 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죠. 대학생이 되어 심리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변화는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지를 이론과 실습으로 배웠으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직 사슬을 끊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자기 자신의 가장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요? 왜 부족하다고 여기고 계신가요? 혹시 예전에 겪었던 경험 때문인가요? 그런데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정말 그대로인가요?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더 이상 약한 아이가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저항할 수 있는 힘과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압적인 부모 밑에서 어쩔 수 없이 굴복하며 참아야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항의할 수 있고, 여건에 따라서 집을 나와 혼자서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믿음직한 사람들이 곁에 있기도 할 겁니다. 어릴 때의 나와는 많은 조건이 변했을 겁니다. 나를 옭아매고 있던 말뚝은 이미 거의 뽑힐 듯 말듯한 상태입니다. 힘차게 뽑아버립시다.


  말뚝과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어떤 식으로 나 스스로를 약한 존재라고 믿게 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그 경험이 단지 지나간 과거일 뿐이라는 걸 알아차려야 합니다. "또 일어날 수도 있잖아요?"라고 묻는다면, 만약 다음에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예전에는 나도 모르는 새 당해버렸을 겁니다. 교통사고처럼요. 그래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르고 허둥대다가 더 많이 상처받았을 테죠. 초보운전자는 교통사고를 당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보험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어떻게 소통해야 가해자 또는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할 수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2~3년 차 운전자가 되었다면 그때보다는 더 많은 걸 알고 있겠죠. 여러분의 소중한 사람이 "~한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라고, 여러분에게 물어본다면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한 번 생각해보아요. 자, 조언을 떠올리셨나요? 그게 바로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해줘야 할 조언입니다. 여러분은 충분히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스스로에게 조언할 말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돕기 위해 오랜 시간 수련하고, 공부하는 심리전문가들이 있으니까요. 도움이 될 정보를 담은 책들이 있으니까요. 도움을 구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위에서도 말했듯이,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도움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밥 먹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듯, 도움을 받는 것도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입니다. 혼자서든 도움을 받아서든 사슬을 끊고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세상을 달릴 수 있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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