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없을 때도 있다

수채화고무나무

by 박민지

식물을 오래 키우다 보면, 잎 상태가 분명히 안 좋은데 아무리 살펴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순간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저를 자꾸 당황하게 만드는 식물, 바로 수채화 고무나무가 그런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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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고무나무가 처음 시장에 등장했을 때 그 예쁜 색에 한눈에 반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구매하려 하면 잎이 얼룩덜룩하거나 흠집이 난 채 판매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농장에 직접 물어도 “원래 그렇다, 상한 잎은 정리해서 쓰라”는 답뿐이었고, 교수님께 샘플을 보내 자문을 구했을 때도 병충해가 아닌 단순한 ‘생리장애’라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스트레스와 비슷한 원인이라고 할까요. 밀식 재배 때문인지, 어릴 때 잎이 약해서 쉽게 상하는 건지… 그 예민함의 이유는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도 자라면서 나오는 새 잎은 흠 없이 곱게 자랍니다.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바라보려 해도, 그냥 이유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듯합니다. 사실 우리 삶에서도 이유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종종 있고 그럴 땐 가볍게 내려놓는 게 정답일 때도 있습니다. 원인과 해결책을 끝내 찾으려 들면, 일이 더 꼬일 때도 있고 그 가운데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이해하려하지 말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다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하고 다른 관점이 보이기도 합니다.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냥 물흐르듯 지나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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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채화 고무나무로 돌아갑니다. 짙고 매끈한 초록빛 잎의 인도고무나무가 친근하다면, 수채화 고무나무는 잎 가장자리가 아이보리빛으로 물들어 있어 화분이 있는 공간에 특별한 포인트가 되어 줍니다. 그래서인지 수업 재료로도 자주 쓰는 편입니다. 수업재료로 사용할 때는 항상 학생 수보다 넉넉히 구매합니다. 흠집 난 잎을 하나하나 떼어주며 정리해주고나면 모양새가 볼품없어진 친구들이 몇몇 나오기 때문이지요. 번거로움과 작은 손해에도 불구하고 수채화 고무나무에 자꾸 눈길이 가는 건 결국 예쁘기 때문일겁니다.


수채화 고무나무는 관리 난이도도 높지 않습니다. 흙이 반정도 마른 뒤에 물을 흠뻑 주는 걸 좋아하고, 물주는 걸 하루이틀 깜빡 잊어도 쉽게 시들지 않을 만큼 인내심이 강한 식물입니다. 대신 일반 고무나무보다 햇빛을 더 필요로 해서 하루 종일 간접광이 드는 자리나 하루에 서너 시간 밝은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곳에 두어야 잎색이 선명해지고 새잎도 잘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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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에는 제 키의 반만 한 수채화 고무나무가 있습니다. 남동향 창가에서 아침 볕을 받으며 3년째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세 장의 새잎을 내어주었고 올해는 두 장을 틔웠습니다. 비료를 깜빡해 성장세는 더디지만, 그 단단한 성장이 얼마나 장한지 모릅니다.


저는 가끔 이 친구에게 속삭입니다. 잎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전히 이 집의 남동향 창가는 네 몫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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