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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Jan 30. 2024

그럴 일은 아닌, 김밥

요즘은 당근이 맛의 열쇠라고 생각하고 있다.



해본 요리 중에 김밥이 제일 어려웠었다. 소비 에너지 100점 만점에 100점!

속재료 최소 예닐곱 가지를, (밥부터) 양이며 간이며 어떻게 맞추고, 순서는 또 어떻게 되는 거야...

다 준비하고 나서, 마는 건 얼마나 까다롭던지. 못나거나 망치거나.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만들지 않을 수 없는 음식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김밥.

1년에 최소 한 번 소풍,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까지 10여 년, 곱하기 세 명.

많이 말아본 사람일수록 "김밥, 그까이꺼"라고 한다는 걸 깨닫고, 믿기로 했다.


이젠 엄마로서 좀 소홀했나, 싶을 때 만든다. 아이들도 남편도 너무 좋아하고, 나도 맛있다.

현재 소비 에너지는 50.


1. 밥을 짓는다. 다 되면 소금, 참기름, 깨로 양념한다.

(10줄 만들려면 쌀 5컵. 소금은 계란후라이 할 때 심정으로, 참기름과 깨는 아깝지 않을 정도로.)


2. 속재료 상: 시금치는 데친 후 무치고, 당근은 채 썰어 기름에 볶고, 계란은 풀어 얇게 부친다.

(간은 조금 간간하다 싶을 정도로. 계란은 10줄 만들면 5개)


3. 속재료 하: 어묵은 간장과 매실액으로 조리고, 스팸/햄은 잘라서 굽고, 단무지는 물을 빼놓는다.

(어묵은 이미 조미되었으므로 거든다는 심정으로. 단무지 대신 무김치나 총각김치를 넣으면 완전 맛남)


4. 김발 위에 김을 놓고 밥을 얇게 편 후, 재료를 넣고 재주껏 만다.

(김은 거친 면이 위로 가게. 밥은 아래 2/3 정도만 깔고, 맨 위에 밥'풀'을 붙인다.)


*김밥은 오만 가지로 변주할 수 있다. 오이, 맛살, 우엉, 진미채, 멸치... 멋대로 넣고 빼자.






그렇게 어려울 수 없던 아이 예방접종도 익숙해질수록 할 만했다.

하지만 세 아이를 한꺼번에 데리고 나까지 독감 예방접종을 하는 날엔 짧고 굵게 정신이 없었다.


안 맞겠다고 징징대다 발악하고, 맞는 순간 비명을 지르고, 끝나자마자 울고불고... 빨리 끝내려고 톤을 높이는 의사 샘과 한 아이를 안은 채로 다른 아이들을 달래고 진정시키는 내 목소리가 동시에. 진정한 서라운드!

'아비규환'이란 단어를 지우고 진료실을 나올 땐 진짜로 땀을 닦았다.


11/9/6세이던 2년 전. 겨울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순서는 겁내지 않고 잘 참는 순. 꼴찌는 둘째와 셋째가 난형난제였으나, 목소리가 우렁찬 셋째를 마지막에 맞히기로 했다.


무섭다고 안 맞겠다고 난리였던 둘째가 끝났다.

이제 마지막 셋째 차례. 더욱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온몸으로 거부하자, 한쪽 의자에 앉아 조용히 어깨를 문지르던 둘째 왈,


(고고하게) OO야, 울 일은 아닌 것 같아.


읭? 모두가 어이없는 틈에 셋째 접종 완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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