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쉬면 꼭 이렇게 되고 만다.
장염 바이러스가 세 딸과 나를 훑고 갔다. 이어달리기처럼 연이어 주자가 바뀌는 동안, 앓는 것 그리고 앓는 것을 보며 애달파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열흘쯤 지나 있었고, 각자 조금씩 몸무게가 빠진 만큼 식욕을 잃었고, 되는 대로 먹었던 후유증처럼 일상이 흐트러져버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투명한 양은냄비처럼 인풋과 아웃풋이 바짝바짝 드러나는 인간인데, 복통과 오심으로 그야말로 고꾸라져버렸다. 내 것이라 여겼던 활기와 생기, 나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호기, 인생 전체는 아니더라도 오늘을 비롯한 얼마간 나날들에 품은 말끔한 기상 같은 것도 한때 튼튼하고 우아했으나 쉽게 찢겨진 거미줄처럼 우습게 나달거렸다.
멍함, 묘한 불쾌감, 날 좀 내버려두길 바라는 마음, 숨고 미루고 치워버리고 싶은 생각도 돋아났다. 어디서 생겨나, 어느 틈으로 들어오는지 모르는 먼지처럼 내게 내려앉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사흘을 넘기면 안 되는 건데. 달리기를 쉬면 꼭 이렇게 되고 만다. 이쯤 되면, 달리기를 해서 끌어올린 내가 진정 나인가, 달리기를 하지 않아 무너진 내가 진정 나인가 궁금해질 지경.
영화 <인셉션>의 세계가 아니더라도, 팽이가 계속 돌면 현실일 리가 없다. 팽이가 빠릿빠릿하게 돌면 나름대로 기운차서 좋지만, 때때로 무언가에 걸려 나뒹굴다 쓰러지고 얼마간 나자빠져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다시 발동을 걸 방법을 아는 것만 해도 어디야? 나는 그렇게 뒤통수도 긁적이고 어깨도 토닥이다 웃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