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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Nov 17. 2023

친정엄마가 종이접기를 한다

주고자 한 사랑은 기회를 엿보듯 흘러나올 거라고

나는 입덧이 많이 괴로운 사람이었다.

다시 임신을 할 때마다, 출산도 육아도 아니고 입덧이 제일 먼저 두려울 만큼.

입덧이 없었다는 사람을 만나면 부러움을 넘어 시기와 질투가 생길 정도로.


숙취 상태로 뱃멀미를 하는 느낌이라고 설명하는데, 포인트는 몇 시간이 아니고 며칠, 몇 주를 멈추지 않고 한다는 데 있다.

내가 격하게 공감한 비유는, 배 속에서 망나니가 칼춤을 춘다는 말이었다. 필요한 뭔가(영양소?)를 찾겠다고 칼로 속을 마구 헤집는다. 자비는 없다. 나는 속에 들어가도 괜찮을, 우주에서 단 한 가지 음식을 찾느라 인터넷과 기억을 헤집는다. 둥, 둥, 둥 북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이성을 잃는다.


그러니까 어떤 어려운 일을 한다고 하자. 마라톤 같은.

더운 날씨. 바닥은 진창길. 거지 같은 신발. 앞이 안 보일 정도의 매연과 초미세먼지. 차와 인파가 넘치고...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내 몸이, 감기몸살에, 장염에, 편두통에... 절여져 있다. 외부의 어려움은 어떻게든 힘을 내 겨뤄보겠는데, 내 몸이 출발선에 서 있지도 못하는 거다.

기권할 수밖에.   


집안일을 비롯해서 만사를 미뤄두고, 침대와 (간혹 변기와) 한몸이 되어서 이 사태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런데 둘째, 셋째 임신 때는 기권은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기어서라도 달려야 한다.


그때 친정엄마가 나 대신 뛰었다. 내 집에 와서, 나와 내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나의 도구들을 쓰고, 나와 내 아이들이 먹고 입고 씻고 싸는 일을 돕는 일에, 친정엄마만 한 백업이 있을까? 남편보다도 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세상 단 한 명의 존재였다.


엄마는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왕복 네다섯 시간을 오가며, 먹을 것을 만들어주고, 청소와 설거지를 해주고, 빨래를 개주고... 그리고 아이들과 놀아주셨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그렇게. 입덧이 잠잠해질 때까지.


살면서 엄마가 내게 남긴 모든 것, 따뜻하고 세심한 사랑의 결핍, 편애 당했다는 확신, 부족한 지원에 대한 서러움, 대들지 못했던 울화, 되돌려주지 못할 상처와 ‘어떻게 엄마가 그래’ 하는 원망... 그 모든 것들이 서서히 지워지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특별했던 것은, 비단 '엄마가 나를 위해, 나를 대신해서 어떤 일을 해주어서'가 아니었다.

그 일을 하러 오는 엄마의 얼굴이, 그 일을 하는 엄마의 등이,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낯설 정도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와 내 아이들)를 보는 반가움, 돕는 일에 대한 기꺼움, '이까짓 것쯤이야' 하는 에너지, 무언가 미련 없이 한 후의 뿌듯함.



그때도 지금처럼,
아니, 어쩌면 언제나
엄마는 최선이었겠구나.



한다고 했을 텐데, 나처럼, 때로 기어서 달리면서라도.

엄마도, 나처럼, 그냥 부족한 인간일 뿐인데.

사랑한다고 모든 게 가능해지고, 사랑한다고 완전해지진 않으니까. 나처럼.


어느 날엔가, 실신한 사람처럼 누웠다가 좀비처럼 고개를 들었을 때, 엄마는 아이들과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종이접기? 눈을 가늘게 뜨고 초점을 맞추었다. 종이접기라...


나는 엄마가 종이접기를 할 수 있는지조차 몰랐다.


엄마는 아이들과 종이접기를 했고, 실뜨기와 쎄쎄쎄를 했고, 그림을 그렸다.


나는 하염없이 그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가장 기이한 장면이면서, 오래도록 그리고 기다린, 그런 식으로 간직한 추억이었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많은 것들, 그러나 하지 못한 일들, 몰라서 혹은 알면서도 잘못한 일들,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아쉬움과 실수, 되돌릴 수 없는 시간, 너의 때, 우리의 시절.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엄마로서의 나날은 그르침과 모자람의 흔적들뿐이다.


내게만 낯설 뿐,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엄마의 손놀림과, 그 앞에 앉아 해바라기처럼 웃는 아이들을 보며, 어떤 식으로든, 어느 날에든, 주고자 한 사랑은 기회를 엿보듯 흘러나올 거라고 안심할 수 있었다.




종이접기 사진은 아무래도 없구만. 사진 찍을 정신까지는 없었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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