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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Nov 11. 2023

엘리베이터 문이 닫힙… 덜컹

나는 짐꾼이로소이다

관계의 역전을, 서열의 재배열을 실감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예스'다.

그 순간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때는 첫째의 생후 1개월 예방접종일.

아기를 안는 건 당연히 남편의 몫이었다. 나는 아직 산후조리 중인 산모니까!

(두툼한 외투를 입고, 목도리와 양말로 몸에 한기가 들지 않게 감싸고..)


그다지 무겁지는 않으나 겉싸개로 세상과 경계를 삼은 아기는 어디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는 형상이었다. 남편은 온마음을 다해 아기(를 포함한 덩어리)를 부둥켜안고 걸었다. 소아과까지 400미터를 오가면서, 남편은 성배를 든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


드디어, 처음으로 우리 눈앞에서 아기가 주사를 맞고... 아기보다 더 오두방정을 떨던 엄빠는(그때의 우리를 제3자로 지칭하고 싶다) 눈물을 훔치고는 아기를 달래느라 또 호들갑을 떨었다.

어마한 임무를 완수한 데 그들은 스스로 뿌듯하여 간호사 샘들께 큰소리로 인사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남편은 부둥켜안은, 심지어 방금 난데없는 찔림을 당한 아기를 어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엘리베이터까지 갈 때도, 들어가서도.

나는 따라갔다. 짐가방을 들고. (짐가방? 채 한 시간이 되지 않는 외출에도, 기저귀와 물티슈와 가재수건과 여벌옷과... 그런 것들이 필요했다.)

나는 산후조리 중인 산모였으나... 아기를 부둥켜안은 남편은 손이 네 개라도 부족해 보였다.

그러니 이쯤은 내가... 덜컹!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아니, 닫히려다 말고 나의 양 어깨와 부닥쳐 다시 열렸다. (아직 산후조리 중인 내 몸...)



아니, 오뽜...!
문 안 잡아줬어...?



남편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아니, 그게..."


그 순간이었다. 나는 알아차렸다. 나는 더 이상 ‘공주‘도 ’애기‘도, ‘차도녀’도 아니었다. 이제 짐을 들고 쫓아가야 할 처지… 아니, 사실 미리 가서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었어야 했다.


감각은 대개 사라진다. 심지어 출산의 고통도 '죽을 만큼 아팠던, 아니 진짜로 죽는 줄 알았던' 기억만 남고, 고통의 감각은 까먹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내 양 어깨, 아니 정확히는 상완을 '타당!' 칠 때의 고통은 자국처럼 남았다. 내 양 상완에 말이다.


묘한 서글픔을 뒤로하고... 삶은 정신없이 굴러갔다. 내 어깨에 지워진 짐가방은 갈수록 많아지고 무거워졌다. 배 속에 아기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더 큰 아기를 안거나 업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를 탓할 일도, 원망할 일도 아니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으므로, '암, 나는 짐꾼이지, 아니 엄마지.' 하고 노곤히 호방해졌다.


시간은 흘러흘러, 기저귀가방, 아기띠와 포대기, 유모차와 모두 결별했다. 다시, 난 홀몸이다. ('거의'를 붙여야겠다. 셋째의 유치원 가방은 50일쯤 후에 작별...) 첫째와 둘째는 각자 자기 가방을 메고, 각자 자기 친구들과 나 모르게 돌아다닌다. 함께 다닐 때 여전히 내 손을 잡겠다고, 나와 팔짱을 끼겠다고 서로 다툴 때도 있지만, 그건 그냥 좋다. 좋아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걷는 일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일 중 손가락에 꼽을 만하니까.


그사이 나는 무엇이 달라졌나.

손에 든 짐이 없을 때의 가뿐함을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짐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동하고, 누군가에게 내 몸과 짐을 의탁했을 날들을 때때로 가늠한다. 그리고 또 언젠가 그렇게 될 날들도.



유모차, 너는 나의 구원자이자 진정한 육아 메이트. 잊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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