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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Nov 11. 2023

이토록 무력한 존재가, 완전히 무방비인 채로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게 된 순간이 언제였는가 묻는다면, 물론 낳자마자는 아니다.

그땐 '굉장히 놀라운 순간' 정도가 알맞을 것 같다.



너...라고? 흠... 너,란 말이지...
그러니까, 네가 바로... 그래, 알…았다.



그 후... 모든 모름과, 파도 파도 나오는 무지의 영역에 대한 경악과, 무지막지한 일상의 변화와, 그럼에도 적응의 틈 없는 무자비함에 대해 넋이 나가 있는 중에, 불쑥 고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보통, 아니 당연히, 아기가 잘 때다. 시간을, 아니, 만사를 잊은 채 가만히 보게 된다. '잘 때가 제일 예쁘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꼭 엄마가 아니더라도, 생후 한 달도 안 된 아기가 눈앞에서 자고 있다? 흘깃 보고 말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홀린 듯 계속 보게 될 것이다.


이는 이론,

그 고요를 즐기는, 아니 느끼는 시간이 도당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는 게 실전, 이라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주양육자를 가르는 기준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그 짧은 시간에 마법이 일어난다.


작다. 정말 작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작다.

목은 머리와 몸을 이어줄 뿐, 아무 힘도 없다. 척추도 마찬가지.

팔다리가 매우 가늘고, 그냥 달려 있다. 속싸개라도 하지 않으면 솜을 덜 넣은 양말인형처럼 나달거린다.

아주 작은 힘으로도, 아니 실수로도 부러뜨릴 것만 같다.


그런데 온통 솜털이 나 있는 이 생명체는, 한번 맡으면 다른 냄새와 절대 헷갈리지 않는 냄새를 풍기며 잔다. 눈을 감고, 배를 볼록볼록 올려가며, 쌔근쌔근.

아무도 없다. 이 존재와 나만 있다.

온 우주에 우리 둘만, 숨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



사람이 이렇게 무력할 수 있나?
사람이 사람 앞에 이렇게 무방비여도 되나?



그때, (다른 사람은 어땠을지 모르겠다) 나는 두려웠다.

오. 내가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털끝 하나 건드리기도 조심스러운 이 존재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내게 맡겨졌다.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두렵고, 무겁다가, 느닷없이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를 믿다니. 나에게 의지하다니. 의심도 망설임도 없이. 이다지도 완전히.


그 순간 무언가, 솔솔 새어나온다.

뭐든 해줘야겠다는 마음. 그러기 위해 어떤 것도 헤쳐나가겠다는 결심. 그래서 무서울 게 없어지는 태세.

나는 확실히 살아있는(물론 자고 있지만) 이 사람(사람 같지 않지만)에게 '사랑의 다짐'을 했던 것이다.


모성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면, 이런 순간들을 지나면서, 이런 마음가짐이 다져지면서라고 확신한다.


이게 얼마나 강력한지, 웬만해선 취소를 안/못 한다.

사춘기 자식의 돌변한, 한번 보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눈빛을 보고도 말이다.



흠~ 보기만 해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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