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처럼 지나가는 나의 하루에

어떤 배경 음악이 흘렀을까

by VIVA

내 하루는 노이즈 캔슬링 된 세상 같다.

언젠가부터 소리가 사라졌다.

작업은 혼자 하고 주문은 무인 키오스크에서 하고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는 소리 인사 대신 고개 인사한다.

그 외 필요한 것들은 핸드폰의 스크롤을 위아래로 움직이다가

터치 몇 번으로 문 앞에 오게 만든다.


세계 과밀 대도시에서 무중력 상태로 붕 떠 다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세상과 단절된 고립된 삶은 아니다.

PC와 핸드폰의 자판으로 공과 사의 관계를 유지하며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느슨한 사회 관계망은

잘 유지되고 있다.


처음부터 무성 無聲의 일상을 보낸 건 아니다.

비대면의 상황과 나의 직업 전환 시기가

딱 맞아떨어진 것뿐이었다.

사회관계 속에서 쉽게 방전되는 나에게는

비대면 생활은 코로나라는 불행이 준 선물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도 말소리가 없는 장면이 있다.

몽타주 montage 다. 짜깁기, 장면 모으기 형식이다.

몽타주는 대사 없이 인물들의 여러 행동이 모여진 시퀀스다.

드라마는 대사로 모든 것이 이루어 지기에

말소리 대사가 없는 몽타주에는 대신 배경음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배경음악은 몽타주 장면의 인물(들)의 감정선과 일치한다.

얼마 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남자가

아침에 단풍 진 나무를 문뜩 올려 보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가 나오고 석양의 바닷가를 걷고

노포에서 혼자 소주 한잔하는 장면을 몽타주를 만든다면

배경 음악으로는 잔나비의 <처음 만날 때처럼>이나

악뮤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이 정도가 흘러야 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고전 문헌학을 전공해 수많은 언어와 고전을 해석하지만

막상 그는 무음의 세상에 살고 있는 듯했다.

그가 라틴어를 죽은 언어라고 할 때

답답해하는 이유를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라틴어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문장들이 과거의 모든 침묵을 자기 안에 품고 있기 때문이었고,

뭔가 대답하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언어는 온갖 소란스러움에서 떨어요 있었고,

확고부동하며 아름다웠다."


그는 소리가 없는 언어를 사랑했다. 시계처럼 정확했던 그레고리우스는

어느 날 갑자기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탄다. 자신의 삶의 괘도에서 일탈해서

후진도 일탈도 없는 기차를 탄다.


"소리 없는 우아함. 익숙한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격렬한 내적 동요를 동반하는

요란하고 시끄러운 드라마일 것이라는 생각은 오류다. (...)

인생을 결정하는 경험의 드라마는

사실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할 때가 많다.

이런 경험은 폭음이나 불꽃이나 화산 폭발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서 경험을 하는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인생에 완전히 새로운 빛과 멜로디를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이 아름다운 무음無音에 특별한 우아함이 있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학교로 출근하던 그레고리우스는

출근길에 자살을 하려던 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가 포르투갈 어를 하기에

헌책방에서 포르투갈어 책을 구입하고 번역을 하면서 리스본으로 무작정 떠난다.

언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스쳐 지나갔던 그 여인의 기억이 강렬해서

여러 이유를 말하려고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언어로 말할 수 없음을 알아챈다.

그리고 가능성과 실제 현실의 차이를 없애고 리스본으로 떠난다.

그러면서 마주하게 되는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 그 간격이 만나는 접점을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말도 안 되게 아름답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레고리우스에게 동질감과 공감을 주고받으며

소리 없는 하루를 보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가

잔나비 콘서트 소식에 들떴다가

전국 매진된 소식에 가라앉았다가...

말 한마디 없는 하루가 저물고 있다.


문득 20살 때 무작정 서울을 떠난 순간이 떠올랐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날까?...

시계처럼 정확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는

어떤 드라마 같은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의 오늘 하루에는 어떤 음악이 흘렀을까?

자잘한 하루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런데 나의 하루에 음악이 깔리기는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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