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메이트

대화가 필요해

by VIVA

공모전의 계절이다.

새해가 밝아오면 JTBC와 TVN이 선두가 되어

SBS, MBC, KBS 가 줄줄이 드라마 공모전을 한다.

신인작가와 기성 작가의 구분 없기에

신생 제작사도 작가를 고용해 지원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데뷔 안 하고 못한 망생이들에게

형평성에 조금 어긋난 조건 같기도 하지만

어떤 존재도 이에 대해 손을 들고 목소리 높이지 않는다

'잘 쓰기만 하면' 되기에 잘 쓰는데만 집중한다.

글 쓰고 생각할 시간도 부족할 때다.


이럴 때면 더욱 싱숭 생숭해지는 망생이들은

예전에 썼던 작품들을 들춰내어 다시 보기도 하고

새로운 소재로 겁나 빨리 써 내려가기도 하고

실력파들은 이미 퇴고까지 거의 다 끝낸 작품을

여럿에게 돌려 읽으라 하면서 객관적인 평가를 부탁하기도 한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흐지부지 파라서...

뭘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내가 애착이 가는 작품 하나가 있다.

벌써 3년째 고치고 또 고치는 작품이다.

이렇게도 했다가 저렇겠도 했다가

누군가를 살렸다가 죽였다가 하고 있다.

수채화에 덧칠을 하면 그 투명함이 사라지거나

심하면 종이가 뚫리는 일도 발생한다.

그런 상황을 예상했던 지라 수없이 고치면서

사람을 죽였다가 다시 부활시키는 일은 있어도

시작과 끝은 초고와 똑같이 유지하고 있다.

장르를 지키면서 기승전결에서 기와 결은 유지 하되

승과 전은 계속해서 여러 버전으로 만들고 있는 거다.


공모전 소식을 들은 오늘,

그 애증의 작품을 폴더에서 다시 열어 봤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왜 안된 걸까, 어디서 막힌 걸까?

모니터가 하얀 종이라는 되는 냥 한 손에 빨간펜을 들고 있었다.

주인공의 비중을 높이고

주인공이 안되면 해결 안 되는 일들을 심어 놓고

개연성이 있되 조금은 독특한 에피소드를 만들고

어디를 더 고쳐야 할까.......

그러다 머리에 목탁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인공이 너무 외롭다'


주인공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벌어진 상황과 갈등을 수습하면서

클라이 맥스로 올라가지만

주인공의 겉도는 모습만 그럴듯할 뿐

이 아이의 내면이 그렇다 하게 나와있지 않았다.

주인공의 감정이 드러나질 않으니 문제 해결사 로봇 같다.

소설체를 벗어나기 위해 심리묘사를 줄이고

행동을 대폭 늘려 버린 맹점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너, 외로울 때 뭐하니?'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커피를 쏟을 뻔한 친구가

나를 빤히 봤다. 나도 그를 빤히 봤다.

그는 알고 있는 답을 왜 묻냐는 시선이었고

나는 빨리 답하라는 재촉의 시선이었다.

이 의미 없는 짧은 기싸움에 꼬리를 내린 건 친구였다.

'너랑 말하지. 너도 잠 안 오면 나한테 전화하잖아'

'아....., 그러네'

나와 성향이 비슷한 그는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를

판단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친구였다.

몇 개월 만에 전화해도, 가식적인 안부전화 없어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서로 생각하는 우리는

오히려 전화가 오면 늘 이렇게 묻는다

'할 말 있구나? 뭐야?'

에둘러 센 척할 필요도 없고 사회적 가면을 쓸 필요도 없이

무의식의 흐름대로 떠들어도 서로 좋은 사이.

'우리는 OO다'라고 한정 지으며 그 안에만 머물지 않고

때로는 친구, 때로는 선후배, 때로는 어른 아이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할 때까지 떠든다.


소설체를 극복하느라 주인공의 마음을 닫아 버렸다.

마치 내가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는 느낌이다.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고 문제 터지면 감정 없이 해결하고

누군가가 고맙다고 말해도 철벽을 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캐릭터.


억눌린 감정과 숨겨진 감정을 드러내려면

주인공이 속 터놓고 이야기하는 상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나 붙들고 속 이야기하면 바보 멍청이 같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인간 터미네이터 같을 것이다.

그러니 주인공의 세워진 심리적 장벽이 스르르 내려지는

상대를 찾아주자. 그래, 그것이 조연이다.

조연이 주인공과 대적하는

안티 또는 빌런의 역할도 있지만

주연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조연도 있다.

2인자, 커텐 뒤에 숨어있는 조력자는

현실계에서는 그들만의 삶이 독립적으로 있지만

창작계에서는 철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도구적 존재다.

주인공의, 주인공에 의한, 주인공을 위한 존재로 설정된다.

어디에서도 조연이 어디 가서 뭘 하는지,

그의 집은 어딘지 나오지 않는다.

특히 70분의 단막에서 조력자는

주인공의 분신과도 같은 솔 메이트가 되어야 한다.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들어주고,

내면의 힘을 주고, 해결점을 제시하는

은둔의 고수나, 위대한 스승이 될 수도 있고

지금은 멀어진 어린 시절의 단짝 친구나,

우정으로 유지되는 옛 연인이 될 수도 있다.


주인공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대신,

거울 보고 혼자 다짐하는 대신,

마스크 쓰고 웅얼거리는 대신 ,

대화할 친구를 짝지어 주자.


드라마는 만남이다.

만나서 수다 떨고 속 터놓고 울고 불고 웃고 떠들자.

현실의 내 삶이 골방에서 자판을 벗 삼아 산다 해도

내가 만들어 내는 인물들은 저 넓은 세상에서

이 인간 저 인간 만나게 하자!

나의 애착 인형과 같은 이 주인공에게 누구를 소개해 줄까?

이제 좀 숨통이 트인다.

나의 단막이 어떻게 풀릴지 다시 궁금해진다.

keyword
이전 14화몽타주처럼 지나가는 나의 하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