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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Feb 03. 2023

한 달 동안 머물 곳을 찾아라!

나의 첫 번째 퀘스트

  

들고 나는 집의 시간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나에게 법의 잣대를 들이밀었던 상대가

거꾸로 법과 계약을 무시하고

자신의 편익만을 위해 소통을 중단했다.

상대는 내가 법을 어길 시에는 이러저러한 조치를 취하겠노라며 온갖 법조항을 들이밀었지만

입장이 뒤집어 지자 자신은 법이 아닌

도의를 언급하며 배려받기를 원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편익을 위해서는

법과 계약은 어겨도 괜찮다는 배짱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계약서와 법과 상식은 존재하지만 이걸 지키려는 자들의 선택과 의지 또한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당연히 지키는 거라 생각했던 나의 상식과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상대의 의지가 충돌했다.

더는 도의와 상식의 선에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상대는 한 달 뒤에 집을 비워주겠노라 했지만

너무나 자주 말을 뒤집은 사람이기에

그 또한 의심스러웠다.

결국 이 문제를 전문가에게 의뢰했다.

그리고 나는 우선 한 달 머물 곳을 찾기로 했다.


집 외에 내가 아는 숙박 형태는 호텔이 전부였다.

해외에 거주하면서 출장이 잦았던 직업을 갖고 있더랬다.

출장 가면 미팅과 성과로 스트레스가 많았도

호텔에 돌아오면 호텔룸이 선사하는

적당한 무책임함이 좋았다.

내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획일적인 룸은

다른 말로 내가 책임지고 돌볼 것 없는 공간은

오직 나 하나만 돌보면 전부인 환경을 만든다.

어떤 작가들은 마감이 다가오면 호텔로 간다는 말에

나는 일찌감치 동감하고 있었다.     

 

여행용 가방에 담긴 몇 가지 물건이라고는

‘의’를 담당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식’은 호텔 밖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이기에

호텔은 오직 ‘주’의 목적에 충실한 공간이 되는 거다.

이렇게 목적이 뚜렷한 공간에서 한정된 시간을 보내는

나를 낯선 공간에 던져두는 경험은 꽤나 즐겁다.

외부 세상의 거친 일은 전문가에게 맡겼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타의 반 자의 반

오랫동안 가지 못한 여행을 가자 맘먹었다.      


그렇게 리스트에 오른 곳이

제주도, 강릉, 부산, 통영, 여수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다다.

겨울 바다를 보며 물멍을 하겠노라 맘먹고

호텔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런 나의 사정을 아는 지인이

한 달 내내 식당에서 밥 먹을 것이 질릴 터이니

에어비앤비를 알아보라 했다.  

에어비앤비도 옵션에 두고 손품을 팔았다.


그러는 사이 오프라인 미팅이 2건이나 생겨났다.

제주도 한 달 살이를 꿈꿨건만,

서울을 오가는 번거로움에 제주도에 줄을 그었다.

자차로 이동하며 제주도에 한달 내내 머무는건 낭만이지만

차타고 배타고 서울을 2번이나 오가는건 미친것 같기에...


남아 있는 부산과 통영과 여수,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한 번도 가지 않은 여수를 선택했다.

3개월의 스트레스를 여수 밤바다를 보며

날려 보낼 생각에 설레고 들떴다.


그런데 예상도 기대도 없었던 곳에서 연락이 왔다.

2월 중으로 만나고 싶다니?

그렇게 1년에 공식 미팅이라고는

5번도 채 안 되는 무명인 내가

이번 달에 미팅이 벌써 4건이 생겨났다.

운명은 왜 1년 치를 이번 달에 몰아서 하자고 하는 건지...      

바다를 포기하기 어려웠다.  

육지를 차로 오가는 번거로움 까지도 견딜만하다고

나를 세뇌시켰다.

이번 아니면 바닷가에서 한 달을 생각 없이

보낼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인천?

아무리 좋게 생각해 봐도, 미안하지만 인천바다는

내가 갖고 있는 바다에 대한 로망을 충족하기 어려울 듯했다.

깊고 푸른 높은 파도도 없고

쪽빛과 옥빛으로 빛나는 바다빛도 아니고

내 머릿속에는 인천 바다의 이미지가 무채색이었다.     

 


이렇게 서울이 아닌 곳에서 머물 곳을 찾고 고민하던 중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한 달 살이 숙소를 찾는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였다. 내 집으로 바로 들어 갈수만 있다면야

이것쯤이야 했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부동산 사장님은 내가 한 달 동안 머물 만한 집을 알아봤다는 것이다. ‘달방’이었다.

난 달방이라는 단어를 소설에서만 경험해 봤다.

지금은 단어조차 어색한 여인숙과 여관에서 달방 손님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런 배경지식이 있기에 안전을 우선하는 나는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도 살던 동네 근처인지라

산책 삼아 다녀오자는 맘으로 ‘달방’ 구경하고 왔다.

나의 배경지식과는 완전히 다른 깔끔하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집주인이 리모델링을 해서 전세를 냈지만

전세입자가 다른 도시로 발령 나는 바람에

후속 임차인을 찾는 중이었는데

내가 한 달을 사용해도 된다는

집주인과 전세입자의 동의하에 진행되는

전대게약이라 했다.  

새로운 문제는 새로운 세상으로 고개를 돌리게 한다.

월세, 전세, 원룸, 투룸, 쓰리룸, 포룸 플러스,

기숙사, 쉐어 하우스, 단독 주택, 다주택, 빌라, 아파트, 오피스텔, 주상복합, 타운하우스까지 다 살아 봤지만 진심으로 달방과 전대 계약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1주일 동안 나는 인천 호텔과 ‘달방’ 사이를 오가며 편익과 손실을 계산했다.

어떤 걸 해도 딱히 맘에 들지 않았다.

앞날의 은행 잔고를 위한 미팅이 생겨 한없이 감사하지만

동시에 바닷가 한 달 살이는 인천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고 반지하 달방도 내키지 않았다.

모니터에는 인천 호텔 예약 완료 버튼이

나의 마지막 클릭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부동산이 달방 계약 여부를 물어 왔다.      

5개월을 계약하자는 사람이 있는데 나를 먼저 보여줘서 전화했다고 하셨다.

한 달 계약보다는 5개월 계약이 임대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좋은 일이지만 부동산 사장님은 선의와 상식으로 그야말로 나를 향해 도리를 지켜주셨다.

나는 바로 계약하겠노라 했다.


바다가 보이는 인천 호텔 사이트의 예약 완료 버튼 대신 오른쪽 상단의 X 표시를 클릭했다.

어떻게든 결정이 나서 마음이 후련했다.

무엇을 선택해도 아쉬움이 가득했을 터였다.

아무거나 선택하는 것이

차라리 시간과 에너지 절약에 좋았다.       


첫 번째 퀘스트, 한 달 머물 공간 확보 완료!

두 번째 퀘스트는 이사짐 정리다.

한국살이 10년 차 변화가 있으려 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두 번째 퀘스트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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