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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Feb 07. 2023

살까 말까?

작은 고민으로 커다란 고민을 밀어 버린다.

이사한 다음 날, 현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사 당일은 외부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고

늦게 까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느라

이것저것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밤을 보내고

퉁퉁 부은 눈 겨우 떠 이 텅 빈 엉터리 집을 보고 나니

이곳에서 어찌 한 달을 보낼까 싶었다.


왜 엉터리냐고?

반지하 집 자체는

올 리모델링이 되어 따듯하고 아늑했다.

이곳을 작업실 삼고 싶은 유혹이 올라올 정도로 맘에 들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미니멀리즘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극빈의 상태였다.


미니멀리즘은 생존과 일상에

필요한 물건을 최소화하는 라이프 스타일이지

지금의 내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계 슈퍼 도시 탑 10안에 드는 서울 한 복판에서

이토록 궁상맞게 살아야 하는 건지 한 달간의 유배생활이 까마득했다.      


책상 위에는 어젯밤 편의점에서 산 도시락이 있다.

어젯밤 너무 배가 고파 배달이라도 시키려 했는데

핸드폰이 방전되어 충전기를 찾다가 편의점으로 충전기를 사러 나갔다.

나간 김에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려 했는데

시간도 너무 늦었고 편하게 도시락을 사들고 왔다.


돌아오자마자 도시락 비닐을 떨리는 손으로 벗겨냈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에 4번 버튼을 눌러 2분을 기다렸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종일 쫄쫄 굶은 탓에 참을성 또한 바닥을 드러냈다.

MSG 범벅의 자극적인 냄새가 풍겨 나왔다.

땡‘ 소리와 함께 옷소매를 길게 잡아당겨

뜨거운 도시락을 잡고 책상 위에 던지듯 올렸다.

신이 나서 뚜껑을 화들짝 열었는데......

없...... 다!

젓가락이...     

다시 편의점 갈까?...

손으로 먹을까?...

중동국가에 출장 갔을 때가 생각났다.

못 먹을 것도 없지 했는데

지금껏 눌러 놓은 마음이 용수철처럼 솟아올랐다.

'지금 나는 궁상맞은 것도 아니다.

그저 미련한 거다, 아... 짜증!'    

도시락 뚜껑을 덮어버렸다.

온몸은 종일의 분주함으로 여기저기 쑤셨고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 도시락이 냄새를 풍기며 책상에 놓여 있다.      

무지막지한 계획형인 나인데....

나에게 이런 모습도 있구나 싶었다.

냉장고는 물론 부엌 살림살이 하나 없는 이곳에

나는 어쩌자고 왔을까.. 호텔로 들어갈걸 그랬나..

에어 비앤비로 갈걸 그랬나..


아주 짧은 순간 내가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기억하려 했다.

소용없었다. 그래봤자, 지금 나는 이곳에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총체적인 난국일까? 신나는 모험일까?


분명 나는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겠노라 선언했는데

이 텅 빈 엉터리 살림에 과연

소비 없이 이 집에서 한 달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제일 첫 번째 질문은 수저와 젓가락을 살까 말까였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면 나가서 사 먹으면 그만이다.

그러려면 집을 나가야 한다.

소식좌 집순이에게 최대의 난제이기도 하다.

밥 먹자고 집을 나가??? 아우 귀찮게 시리...

그렇다고 집에서 밥을 먹을 수도 없다.

만들어 먹을 도구도 먹을 도구도 없다.

그렇다고 매번 배달 음식을 먹는 것도

쓰레기 배출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싫었다.

그래서 뭐 어쩌자고?!!!!!     


지인 중의 한 명이

서울로 올라와 처음 자취했을 때의 이야기다.

이삿날답게 짐 정리를 끝내고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었는데

그때 스테인리스 수저가 함께 배달되었다고 했다.

살림살이 하나 없던 터라 수저를 빼고 그릇을 밖에 두었는데

다음 날 배달원이 수저를 찾으러 왔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상황이 너무 민망했다고

마치 그 이야기를 무용담 처럼 했는데

지금 내 상황이 그런 거 같다.


하지만 30년 전과 지금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어!

모든 것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무엇 보다 1회용 용품이 차고 넘쳐나는데

나의 생각이 너무 구식이거나 궁상맞거나

아니면 이 모든 상황이 화가 나는데

그저 억누르느라 귀찮아하거나 피하거나 하는

그란 심정인 것 같았다.


'한 달이다, 한 달! 한 달만 버티면 미니멀리즘이고 나발이고

컨테이너에 있는 짐과 함께 내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다.

이런 경험 두 번 다시없겠지'

맘을 다시 고쳐 먹고 근처 전통 시장으로 나섰다.

'아... 배고파...!'


주부 경력 30년 차가 코 앞인데

수저와 젓가락을 이렇게 단품으로 파는지 처음 알았다.

저걸 집어 들고 살 까 말까 고민했다.

모양도 싫었고 너무 생뚱맞아서

내 살림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살까 말까 하는 고민은

달방에서 밥을 먹을까 말까 와 같은 맥락의 고민이었다.


컨테이너에 보관 중인 짐에

숟가락과 젓가락이 차고 넘쳤는데

이 생뚱맞은 수저와 젓가락을 사야 하는 걸까?...


'옛다, 한 달 동안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며

나 자신에게 기념품을 선물했다.

이 수저와 젓가락을 보면서 오늘의 달방을 기억하겠지.


하루 종일 1800 원하는 수저 세트를 살까 말까 고민하면서

변호사와 대화하며 맘속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근심을 밀어 버렸다.


작은 문제를 일부러 만들어서 큰 문제를 잊게 만드는

나의 인생 치트킷이다.

문제가 너무 커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범위로 넘어가

나는 뭐든 일을 만든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에서.

그래서 쓰잘데 없는 고민을 일부러 만들고 해결하면서

무너진 자존감에 무력하게 너 부러 있지 않고

스스로 작은 효용감을 만들어 낸다.


저녁 즈음,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다.

승소는 매우 확실하고

내가 얻게 될 손해 배상의 금액 또한 예상 가능하다고 했다.


모든 것을 그에게 의뢰하고 나는 수저와 젓가락 세트를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달방으로 돌아왔다.

물론 도시락도 편의점에서 새로 샀다.

그리고 감사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얼마나 맛있던지...

혈관에 자극적인 짠맛 단맛이 가득해지자 몸이 늘어졌다.

하루가 갔다. 28일이 더 남았다... 휴우...

그나저나...

남이 하는 미니멀 라이프 멋져 보였는데

내가 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왜 이토록 꾀죄죄해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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