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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Feb 04. 2023

뒤죽박죽 이삿날

마지막 세 번째 퀘스트 : 이사하기

  

‘깨톡’

오전 8시에 오겠다던 이사팀은

7시 30분에 문 앞에 있다며 톡을 보내왔다.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함께 했던 이삿짐팀이라

복잡한 집 구조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이사를 수없이 다녀 봤지만

이번에는 왜 이리도 긴장이 되는지

새벽부터 일어나 잡다한 사물과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건만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게 복잡했다.


우선 짐을 3개로 분류해야 했다.

컨테이너 보관으로 들어가는 짐, 폐기하는 짐,

달방으로 가는 짐.

그래, 어려운 일 아니라고 나는 나를 설득했다.

어려운 게 아니라 귀찮은 거고!

귀찮은 건 쉬운 거니까 후딱 해버리면 그만이라 맘먹었다.

폐기하는 짐은 스티커를 붙여 놓으니 구별이 쉽게 되었고

달방으로 가는 것이라 봤자

노트북과 프린터, 읽을 책과 자료 그리고 문구류

거기에 옷 몇 벌과 이불이 필요했고,

달방은 호텔과 달리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의식주를 해결할 살림살이가 필요했다.

버리려고 했던 것들을 한 달 더 사용하고

그곳에서 폐기할 맘으로 최소한만 준비했다.

나머지는 보관 컨테이너로 가면 된다.      


이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것은 보관용, 저것은 폐기용,

화분과 함께 모여 있는 짐들은 달방용이라고 알려주었다.


준비해 둔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가 끝난 후

집은 테이프 붙이는 소리로 가득했다.

보관 이사이기 때문에 종이 박스가 필요했고

종이 박스 밑바닥을 테이프로 쫙쫙 붙이는 소리에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이삿짐센터 삼촌과 이모들은

어찌나 손발이 빠르고 힘이 센지

이삿짐센터 이름을 헤라클레스로 바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나가는 집에 들어올 후속 임차인은

다음 날 이사 올 예정이라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이사일에 인이 배겨 갑자기 천천히 하기가 어렵다며

일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한시도 쉬지 않고

그 추운 날 땀을 닦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박스와 뽁뽁이가 부족해 중간에 몇 번 더 가져오는 일은 있었지만 내가 부동산에 가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처리하는 동안 짐이 모두 트럭에 실려 있었다.

며칠 내내 긴장했지만 막상 너무 쉽게 일이 착착 진행되어

일하시는 분들 모두에게 감사했다.

이삿짐 팀은 점심 브레이크를 한다 했으니

그 사이에  달방을 청소를 해 두면 된다.           

나는 달방으로 향했다.


달방은 외관이 빨간 벽돌로 된  반지하다.  

40년도 넘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리모델링이 아주 깔끔하게 되어 

비교적 비싸게 매물이 나온 방이라 했다.

하지만 임차인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후속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워 집주인과 협의 끝에

이 물건을 달방 / 단기 임대로 계약해도 된다는

전대 매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전대인이 나였다.

달방에 들어 서자 마자 나는 보일러를 틀었다.

보일러가 가열차게 작동되는지 방바닥이 금세 뜨근해졌다.

바닥을 닦기도 전에 나는 그대로 대자로 누웠다.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이 스르르 바닥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몇 분을 누워 있었을까? 눈이 떠졌고 고개를 돌리니

바닥에 쌓인 검은 먼지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피곤해 사람들이 신발을 신고 다닌 바닥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든 거다.


‘어차피 이 옷 빨려했던 거니까’ 하고 먼지를 툭툭 털고

챙겨놓은 청소도구로 바닥을 쓸고 닦았다.      

청소가 다 끝났을 때 점심 브레이크를 끝낸 이삿짐팀이 도착했다.


화분 옆에 달방 짐이라고 옹기종기 모아 놓은 짐들이 하나둘씩  거실로 옮겨졌다.

그런데..... 오잉? 왜 이렇게 짐이 없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이모님께 물어봤다.

‘다른 트럭에 짐이 더 있나요? 짐이 다 안 온 거 같은데....’  

뭔가 너무 쉽게 착착진행되었던걸까?...     


이불도 옷도 없다.

달방에 옮겨진 건 매트리스, 좌식 소파, 화분,

전자레인지, 커피 기계 그리고 캐리어들이었다.

대형 캐리어에는 노트북과 프린터 그 외 사무 문구 용품과 책이 들어 있고

소형 캐리어에는 깨지고 흘릴 수 있는 화장품 샴푸 같은 것들이 담았는데...

어쩐담... 옷과 이불은 이케아 대형 쇼핑백에 담아 두었는데

그걸 보관짐인 줄 알고 포장했음에 틀림없다.

컨테이너에 가서 찾는다 해도

이케아 대형 쇼핑백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일일이 짐을 다 열어 봐야 한다는 건데 그건 불가능했다.

팀장님이 컨테이너 현장 사진을 이렇게 보내왔다.

5ft 이사짐 보관용 콘테이너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겠노라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렸건만

한 달을 위해 또 뭔가를 사야 한다니...      

그렇다고 컨테이너를 열어 박스를 내리고 일일이 찾는 것 역시 문제 해결은 아니었다.

전달 사항이 어디에서 누구에게 왜곡되었는지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다들 미안해하시고 피곤해하셔서

어서 평화롭게 이사를 마무리하고 싶을 뿐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우선은 긴 호흡을 내쉰다.

그리고 나서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 해결책이 쉽게 떠오른다.

감정에 취약한 나는 바로 바로 맞받아치지 못하고

우선은 모든  말과 상황을 꿀꺽 삼킨다.

이후에 되새김질을 하든

소화를 하든 문제를 파악할 시간을 확보한다.

그 시간동안 책상 정리를 하거나 집청소를 하기도 하고 머리를 감거나 옷을 갈아 입는다.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을 하면서

문제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거리두기를 한다.

그러면 문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달방을 계약할 때

임차인의 잔여 가구를 한쪽 방에 보관하는 조건이었다.

그중에서 나는 책상과 의자를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우선 책상을 거실로 끌어냈다. 일한 공간을 세팅했다.

노트북과 프린터를 연결하고 책과독서대와 필통을 올려두고

예전의 작업실과 비슷하게 자리를 마련했다.


의자에 앉아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이 먼지 투성이 옷 한 벌로 한 달을 난다 해도 빨아 입어야 하는데 세탁기도 없고 빨래방에 가려면...  입고 가야 할 갈아입을 옷 한 벌은 있어야 하잖아,

빨래방에서  옷을 훌러덩 벗고 속옷 입고 기다릴 수는 없잖아, 영화도 아니고..

이불은 어쩔 거냐, 패딩을 이불 삼아 자야 하는 건가?....’


그러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혼자 박수를 치며 ‘맞아 맞네!'

일을 뒤로 미뤘던 덕분에 문제는 해결되었다.

자동차에는 기부하려고 모아 두은 20-30년 된 옷들이 모아져 있었고

빨래방에 가져가 빨겠노라 하고 한 달을 까먹고 있었던 간절기 이불이 있었다.

'한 달 동안은 올드타임패션으로 살아가겠구나,

안 사도 된다! '


최극강의 미니멀 라이프,  

바다가 아닌 발이 보이는 달방 한 달 살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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