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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Feb 03. 2023

버려야 하느니라, 버려야 사느니라

두 번째 퀘스트 :  이삿짐 정리

정확하게 한국살이 11년 차 내 뒤로

서울 생활 10년이 있다.

한국에 돌아올 때 캐리어 몇 개였는데

이삿짐 견적은 몇 톤 급이다.

사실  서울에 왔을 때는 건강을 핑계로

한국의 4계절을 걱정근심 없이 딱 1년만 만끽하자는

용기와 베짱이 있었다.

그 덕에 애매모호한 고민 없이 결정이 쉬웠다.

챙겨 올 것도 없었다. 다시 돌아갈 거라 생각했다.

서울에 있으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맘먹었더랬다.


마치 감옥에서 마지막 외출을 나온 사형수의 욕망이었을까?

죽기 전에 뭐든 다 해보겠다는 의지 충만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뿐

막상 탈출하고 나의 안전지대로 복귀하고 나니

욕망과 위시 리스트는 과거형이 되었고

그저 서울 땅에 있는 거 자체가 신기하고 감사했을 뿐이었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말소리와

24시간 언제든 갈 수 있는 곳들 하며

여전히 나는 서울 골목을 산책할 때면

내가 서울에 있는 게 기적 같은 일이라고 중얼거리곤 한다.      


반항과 부조리의 상징적 인물인 시시포스는

지상으로 다시 가고 싶어서 지하의 신 하데스와 약속을 한다.

자신의 시신을 함부로 대하는 부인을 혼내주고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꼭!

하데스는 시지 포스를 믿어 지상으로 다시 올려 보내지만

시지 포스는 지상의 삶이 너무 좋아서

그만 하데스와 한 약속을 잊어버린다.

하데스는 인간의 한계를 알기에 당장 잡아와

벌을 내리지 않고 시시포스가 삶을 다 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그가 죽고 자신의 앞으로 다시 왔을 때

바위를 언덕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내린다.      

하지만 내 삶에는 아직 하데스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해외의 삶을 포기하면서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을 기꺼이 치르면서도 서울의 삶을 누리기 바랐다.

누가 날 잡으러 오면 시시포스 못지 않게 맞짱 뜰 각오였다.

그리고 기회비용을 보상할 방법이

분명 서울에 차고 넘쳤다고 믿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포기에 대한 보상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나의 존엄이 더 중요해졌다.      

삶은 통제 불가이기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내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내 마음 하나만 부여잡고 용기 내어

서울에 머물 것을 결정했다.

집을 구하고 살림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10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입주한 나의 첫 번째 서울 집. 

텅 빈 마루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대형 소파에 몸을 던졌다.

나는 그 집을 방공호라 이름 붙이고

야금야금 집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제는 버려야 한다.

이삿짐 비용과 보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그렇고

사물에 치여 사는 내가 한심해 보이기 까지 했다.

무슨 미련으로 과거의 사물에 붙잡혀

추억놀이를 하고 있나 싶었다.

‘햐..... 정리해도 끝이 나질 않네...

창고방과 옷방은 화수분인가...’


1차적으로 마구잡이 정리를 했다.

지인을 불러 옷을 고르라 했다.

이케아 파란색 쇼핑백 4개가

지인의 트렁크와 뒤좌석을 채웠다.

휘어질 듯했던 옷방 행거가 일자가 되면서

제법 공간이 헐거워지시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버려야 했다. 왜 줄어들지 않는 걸까...

밤새 누군가 다시 채워 놓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중에 나를 가장 우물쩡 거리게 만드는 건

오래된 옷들이었다.

이럴 때 저럴 때 입었던 스토리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놈의 사연과 미련 때문에 정리하지 못하고

지금껏 끌어안고 있는 철 지난 옷들!

그중에 정말 가장 오래된 건 95년으로 기억되는

내 옷도 아닌 동생 옷이었다.

막내 이모가 동생에게 선물한 검정 겨울 코트였다.

동생이 입었던 쉬크하고 세련된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클래식한 디자인에 검은색이니 유행도 타지 않고

겨울이면 한두 번씩 꼭 입었는데

패딩에 밀려나 몇 년 동안 드레스 룸 밖을

벗어나지 못한 옷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어 동생에게 보냈다.

동생의 기억에 이 옷은 없었다.

나는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그녀의 기억을 소환했다.

‘아~~!’ 그러더니 말이 없어졌다.

‘근데 그게 아직도 있다고? 제발 좀 버려라, 언니야!’     




인간도 사물도 좋아하면 올인하는 스타일로

1:1 관계에 충실한 지라

학교를 다닐 때도 단짝 친구 한 명이 있으면 충분했고

옷도 좋아하는 거 한 벌이면 충분했다.

친구들은 그렇게 깊고 오래 만나도 좋지만

옷은 정들었다는 이유로 정리하지 못하니

옷장에 옷들이 살아온 날들만큼 옷이 쌓여 갔다.

그놈의 정 때문에...과감하게 과거를 정리하듯

그 속에 담겨 있던 옷들도 정리했다.

대부분 좋은 브랜드이기도 했고

관리 또한 잘했던 지라 의류 수거함에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동네에 기부할 상점이 있어 우선은 자동차 트렁크에

기부할 옷들 이케아 파란 쇼핑백 3개를  옮겼다.

누군가에게 또한 사랑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작별을 고했다.


다음은 소파다.  4인용의 카우치 스타일 소파는

배보다 배꼽이 커져서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이삿짐센터에서는 이삿날 버릴 수 있게

내려다 주겠다고는 했다.

지금 이 소파를 버리면 또 사야 했다.

사는 비용 보다도 소파를 고르고 비교하고 선택해야 하는 노력이 피곤했다.

그리고 환경오염과 자원 낭비라는 생각에 버리기에는

너무 양심에 걸렸다.

이 놈의 소파를 어떻게 해야 할까...

초록창에 ‘소파’를 치니 연관 검색어로 ‘소파 천갈이’가 나왔다. '오호라~ '

나는 몇 군데 업체를 문의하고 비교 견적을 받았다.

기억자의 소파를 일자로 만들어주는 것도 가능하다 했다.

소파 리모델링이라니, 감동이었다.

비용뿐만 아니라 소통 또한 적극적인 업체를 선정했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업체의 사장님이 소파 원단 샘플집을 들고 오셔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셨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사장님의 믿음직한 조언에

작업실에서 썼던 2인용 소파와 1인용 독서 의자,

그리고 테이블 의자까지 총 5개 천갈이를 의뢰했다.

대형 소파 하나 가격으로 5개 아이템이

새로 태어날 예정이다.

천갈이는 보통 열흘에서 2주 정도 소요되지만

사장님은 한 달의 시간을 주면 아주 여유 있게

작업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오케이 했다.

내가 오히려 한 달 동안 보관을 부탁해야 할 입장이었는데

이삿짐 보관 컨테이너 크기도 줄이고

리모델링되는 소파와 의자도 얻게 되다니  일이 착착 진행되는 느낌에 기분이 마냥 좋았다.

     



이삿날이 다가오면서 계속 무엇인가를 버렸다.

버렸다는 게 쓰레기 봉지로 간다는 게 아니라

내 곁에서 사라지게 한다는 뜻이다.

책은 중고 서점에, 문구들과 옷은 지인들에게,

가구는 리모델링 업체와 재활용 업체에

전자 제품은 폐가전 수거 업체에

정말 정말 사용 불가능하다 판단되는 것들은

쓰레기봉투로 향했다.

매일매일 버리는 일이 가장 큰 목표인 듯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정리되는 물건들의 반은 필요보다는

욕망을 위한 소비재인 듯했다.

특히나 마감이 다가오면 나의 마음은 마감은 즐거운 일이라고 나의 머리를 세뇌하지만

막상 그 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아

그 욕망을 풀 대상을 찾아 헤매게 된다.

내가 앓는 마감 증후군이다.

평소에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소비욕이

마치 절대적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다 마감이 지나면 스르륵 사라지는 마음이지만

그게 쉽게 조절되지 않았다.

마감의 불안을 그 물건들의 구매 버튼을 누르면서

해소하는 방법이었다.

마치 내가 큰 일라도 낸 듯한 자아 효용감을

엉뚱한곳에서 찾아내고 있었다.

비싼 물건도 아니고 그 정도의 값은 치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 정말 다짐했다.

그깟 것도 견디지 못하는 나의 유약한 멘탈

시험해 보자고. 그리고 사물에 큰 의미를 두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사람에게도 사물에게도 쉽게 정 주지 말자 결심했다.


점점 비워지는 집을 보면서 마음이 가벼웠다.

내가 얼마나 사물에 치이고 살았는지 모든 게 새삼스러웠다.

처음 서울을 떠날 때도 이민가방 하나와 배낭 메고 갔었는데

다시 서울을 돌아왔을 때도 캐리어 몇 개가 전부였는데

그렇게 간단히 살 수 있는 삶을 왜 이리 부풀렸을까...


거품을 걷어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붕 뜬 내 존재가 땅바닥에 편히 서 있을 수 있었다.

버리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버리는 이 태도로 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두 번째 퀘스트도 완료다. 마지막 퀘스트는 이제 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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