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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Jan 17. 2023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내 집을 두고 내 집에 못 들어가다니...


어제 통보를 받았다.

내 집에 내가 들어갈 수 없다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를 한 겨울 살얼음판에 밀어 두고

때로는 예의 어린 말투로, 때로는 협박으로,

때로는 조롱으로

그의 소통은 크레센도마냥 점점 강해졌다.

상대는 내가 살얼음판에서 미끄러져

물에 빠지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강둑에 서서 나의 신경을 계속 건드렸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살얼음판의 강물을 간신히 건넜고

나도 상대와 동등하게 강둑에 이르러 우뚝 일어났다.

하지만 상대는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발을 들어 물가로 나를 또 밀어낸다.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버티고 있다.

온몸이 진흙으로 축축하고 지저분하다.

이 싸움이 계속된다면 진흙탕싸움이 될 것이다.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 나는 상대를 노려보고만 있다.


싸움은 늘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한다.

한쪽만 피해자, 가해자만 될 수는 없다.

절대악, 절대 선은 영화 드라마에서만 있다.

그래야 이야기가 쫄깃해지고 권선징악이 될 테니까

그래서 현실에서는 싸움이 나면 공론화를 하기보다는

조용히 진행하는 것이 좋다.

분명 그 싸움이 나는 데는 나의 지분도 있으니까.

가급적이면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고

그 과정이 조율이 안될 때는 마지막으로 가는 게 법이다.

때로는 법이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해도

가장 객관적이고 공평하다고 믿고 싶은 게 법이다.


마지막에 법에 호소하는 건

우리나라 정서에 그렇게 맞지 않는다.

아니, 나는 법에 호소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진흙탕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직접 해 보고 당해 본 적은 없지만

주위에 그놈의 법때문에

검은 머리 흰머리 된 사람 꽤나 많아서...


특히 민사의 경우에는  법과 판례가 있어도

서로의 입장을 판사가 어떻게 들어줄지 모르기 때문에

지리멸렬한 기나긴 싸움이 되는 게 부지기수다.


나, 표면적으로는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선천적으로 내성적이며

소심한 베포도 배짱도 없는 인간이다.

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나가는지라

누군가 나에게 법으로 어쩌고 저쩌고 하면 겁부터 먹는다.

그렇게 법으로 나에게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며

겁박과 협박의 경계에서 나를 호구 삼았던 자가

이제와서 자신은 계약과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원만하게 해결하자고 제안한다.

잠시 고민했더랬다. 원만하게 그냥 넘어가고 말까?...


SNS 짤로 자주 등장하는

한예슬의 갑질 연기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다

'인어공주가 왕자를 칼로 찔러 죽이려다

배짱이 모자라서 결국은 물에 빠져 죽어'

나는 이미 물에 빠졌다. 아직 죽지는 않았으니

물에 가라앉든가 위로 떠오르든가 해야 한다.

당연히 떠올라야 한다. 그러려고 쓰는 거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아도 되고

내 입장을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를 비난하고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글쓴이가 사건의 당사자이기에

백 프로 객관적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타산지석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리고 내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고

분명 이 일로 내가 잃는 것보다는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에

최대한 감정을 빼고 마치 진술서를 작성하듯

육하원칙에 따라 적어 내리고 싶다

어쩌다 내가 내 집에 못 들어 가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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