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과 동유럽의 유대인

세속주의와 정통주의의 괴리- 시오니즘

by VIVA

서유럽으로 동화되는 유대인들은 기독교로의 개종은 자연스러웠다. 기독교로 개종하면 서유럽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시민의 의무를 하면서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초기에는 기독교로 개종하고 유대교를 암암리에 유지하면서 전통을 지키려 했지만 많은 서유럽 유대인들은 정착한 나라와 도시에 계속해서 머물고 싶어 했다. 수천 년의 떠돌이 방랑 생활이 비로소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쉽게 개종부터 했다. 개종한다고 해서 유대인이 아닌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유럽 시민으로 인정받고 법과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소속감 그리고 그것이 주는 안정감은 디아스포라 민족이 최종적으로 얻고자 했던 열망이었을 것이다. 기독교로 개종한다고 해도 자신들의 종교와 민족 정체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서유럽에 정착한 유대인과는 달리 동유럽과 중부 유럽에 머물던 유대인들은 조금 더 신비적이고 전통적인 관습으로 유대교를 유지했다. 언젠가는 조상의 땅인 가나안 언덕으로 돌아가리라는 믿음으로 시오니즘 운동을 했다. 시오니즘은 예루살렘 중심부의 시온이라는 약속된 땅으로 돌아간다는 계시를 믿는 것이다. 방랑객과 행랑 상을 하던 중·동부유럽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은 삶의 모든 것이었다. 시오니즘은 점차 전 유럽으로 퍼졌다. 자본가들은 모금하고 비밀리에 종교 집회를 열기도 했다.


때마침 1차 대전 때 영국은 유대인들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영국 연합군의 편을 들면 팔레스타인의 땅에 유대인국가를 건설해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이것이 영국의 밸푸어 선언이다. 하지만 동시에 영국은 독일을 돕던 오스만 튀르크를 저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과 또 다른 이중 계약을 맺는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에게 같은 땅을 주겠다니!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은 이러한 이중 계약을 몰랐기에 서로 같은 땅에 서로의 국가를 세울 것을 희망하고 영국을 도왔다. 중동분쟁의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동유럽 유대인은 서유럽 문화에 동화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며 선조의 땅으로 돌아갈 날을 고대했다.


유럽문화에 동화한 서유럽 유대인, 헤르만 카프카


헤르만 카프카는 동유럽에 살았지만, 서유럽 문화에 동화된 유대인이었다. 그는 당시 강대국으로 떠오르던 독일에 편승하고 체코의 상류층으로 편입하고 싶어 했다. 가정에서 유대인 관습이나 전통을 지키지 않았다. 자신이 서구 문화에 동화하여 성공한 것처럼 자기 아들도 그렇게 자라나기를 바랐다. 그는 아들이 완벽하게 기독교 자본주의 문화에 동화되어 성공하기를 열망했다. 헤르만 카프카의 목표는 하나로 단순했다. 세속적인 성공과 안정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 카프카는 완전히 달랐다. 생각 많고 세심하고 배려 많은 정서를 타고났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인간의 내면과 영혼에 대한 탐구를 갈구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서로 다른 정서는 카프카의 불행으로 일어진다.


카프카는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카프카는 체코인들 사이에서 유대인으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내세울 수도 없었다. 그의 집안은 기독교로 개종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유대인이지만 유대 어를 하지 못했고, 체코어보다는 독일어를 사용했다. 헤르만 카프카의 세속적인 성공의 열망으로 당시에 좋다는 것은 바로 수용하고 변화하고 적응했지만, 카프카에게는 이러한 급격한 변화가 혼란스럽기만 했다. 체코 (오스트리아_헝가리 제국)에 살면서 공용어인 체코어가 아닌 독일어를 사용했고, 유대인이면서 기독교를 믿었기에,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유대인 이었지만 유대인 교육과 신앙 없이 자라나 언어적으로, 종교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카프카는 체코 프라하의 상류계층인 독일인에게 유대인이란 이유로, 유대인에게는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무리에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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