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에서 울리는 외로운 외침

아버지, 왜 저에게 그러셨어요?

by VIVA


“때때로 저는 세계지도가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아버지가 사지를 쫙 뻗고 누워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러면 마치 저한테는 아버지가 가리고 계시지 않거나 아버지의 손이 미치지 않는 지역만이 저의 생활공간이 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집니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프라츠 카프카


어느 겨울밤, 잠에서 깨어난 어린 카프카는 목이 말랐다. 물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추운 밤 잠옷만 입고 있는 어린 카프카를 발코니로 내쫓아 반성하라고 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조차 몰랐던 카프카는 그저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카프카는 일기에서 회상하기를 아버지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고 어린 나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큰 힘을 가진 존재였고 그 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는 훈육과 양육의 하나라고 할지라도 명백하게 아동 학대로 보인다. 어릴 적 그 충격은 카프카의 기억에 새겨져 평생을 괴롭혔다.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나약하게 핑계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잊히지 않는, 잊을 수 없는 기억도 있다. 기억으로 각인된 사건의 디테일은 사라져도 감정은 오랫동안 남아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한다.


헤르만 카프카의 독선적인 모습은 어머니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카프카의 어머니 율리에 카프카는 자상하고 이해심이 많은 여인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한 남편 앞에서 카프카과 비슷하게 무기력해지고 침묵했다고 한다. 카프카가 기억하는 그의 어머니는 다정했지만 늘 지쳐 있어 자식을 돌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남편 뒷바라지에 양육할 여력이 없었다. 헤르만 카프카는 집안의 독재자이며 그가 하는 말은 곧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었다.

헤르만과 율리에는 아들 셋과 딸 셋의 6남매를 두었다. 하지만 아들 둘은 어려서 사망해 카프카는 후천적으로 외아들이 되었다. 율리아는 계속되는 출산과 남편의 뒷바라지로 양육에 신경 쓰지 못했다. 카프카는 유모와 하녀의 보살핌으로 자랐다.

헤르만은 율리에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소유욕과 집착이 강했기에 자신의 부인을 늘 곁에 두고 자신이 하는 모든 대화를 들어주기 바랐고, 그것이 사랑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화 내용은 대부분이 사업 이야기였다. 헤르만은 율리에게 정서적 지지를 원했고 나약한 율리에게는 이것이 매우 벅찬 일이었다고 한다. 헤르만과 달리 율리에는 사업이 잘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자주 시달렸고, 그 불안은 예민한 카프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카프카의 어머니, 율리에는 카프카의 문학 감수성을 이해했고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독선적인 남편을 거부하고 아들을 지지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하지 않았다. 카프카의 작품에 나오는 어머니의 모습은 자신의 어머니처럼 문제 해결이나 정서적 지지를 해주지 못하고 문제가 발생하며 그저 당황해하며 무기력한 모습으로만 나온다. 카프카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커졌지만, 자신이 장남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또한 깊어갔다. 카프카는 어린 시절 부모와 충분한 교감과 정서적 교류가 없어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평생 안고 산다.


카프카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환경과 세상을 원망하다가도, 왜 자신은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지 자책도 많이 했다. 카프카는 이 도돌이표와 같은 생각의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했다. 늘 세상의 고민을 한 몸에 지고 사는 듯했다. 카프카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니체 사상에 매혹되어 니체가 발행인의 한 명으로 있었던 『예술의 파수꾼』 잡지를 구독하고 독서 클럽에도 가입했다. 습작도 해보고 짧은 글들을 써나갔지만 공개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카프카의 학교생활이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성적은 좋았고 대학에 가면 전공으로 철학을 선택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친구와 함께 대학 생활을 하고 싶어 화학과에 지원했다. 그의 바람은 다시 한번 제동이 걸린다. 카프카의 아버지가 법대가 아니면 등록금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어쩔 수 없이 법학과로 전공을 변경하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해 독일어 문학과 예술사를 선택했다.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독일 문학을 전공하기보다는 독일에 가서 직접 독문학을 배우고 싶어 했다. 독일은 헤르만이 동경하던 나라였는데 카프카의 독일 유학을 찬성하지 않았다. 이유는 전공 때문이었다. 독문학은 경제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분노했고 거기에 다른 나라로 가서 큰 비용을 치르며 배운다고 하니 그로써는 찬성할 수가 없었다.

카프카는 이러한 아버지의 주장에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결국 프라하에서 법학을 전공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아버지의 결정은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그는 끝내 법대를 졸업했다. 그의 목표는 아버지로부터 독립이었다. 카프카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법학과를 졸업하면서 더 이상 아버지에게 진 빚이 없다고 생각한 카프카는 자신이 원하는 문학과 예술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장을 원했다. 그는 1차적으로 아버지와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으로써 그의 그늘을 벗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카프카는 어떻게든 심리적 비상구를 찾고 싶어 했다. 카프카는 학교 공부보다는 스스로 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새로운 학문으로 떠오른 과학과 진화론 그리고 니체에 빠졌다. 그는 유대교와 다른 종교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명확한 원인과 결과가 나오는 과학을 좋아했다. 자신이 풀어나가지 못하는 환경과 운명이 답답했기에 원인과 결과가 나오는 이성적인 과학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즈음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일기 형식을 좋아했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 세상과 접점을 만들려는 시도였는지, 자기 내면을 찾기 위한 시도였는지, 그저 글로 감정을 풀어내는 것이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일기의 일인칭 형식은 매우 자기 고백적이고 자기 몰두 적이다. 일기는 사건과 감정의 복기이며 내면의 거울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다가 글을 쓰면 쓸수록 자신의 내면이 서서히 반사되기 시작한다.

카프카의 일기는 다소 격정적이고 감성적인 면이 강하지만, 카프카는 그만큼 세밀한 인간의 감정을 잘 파고드는 능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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