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첫 번째 직장은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 일반 보험 회사였다. 업무시간도 길고 업무도 막중했다. 스트레스가 늘어갔고 신경은 예민해졌다. 카프카는 업무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과도한 업무와 그 스트레스로 신경과민진단을 받고 직장을 그만두고 그의 글쓰기를 가능하게 해 준, 꿈의 직장, 노동자 재해 보험 공사에 취직한다. 월급은 첫 번째 직장보다 10배가량 많았고 근무시간은 반대로 매우 짧았다.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2시에 퇴근이라니. 또한 주거 보조금과 근무 수당도 별도로 있었다.
카프카에게 정말 맘에 들었던 것은 바로 근무 시간이었다. 그는 오후 2시에 퇴근해서 3시에서 7시까지 잠을 잤다가 간단히 저녁을 먹고 밤 11시 전후로 글을 쓰기 시작해 새벽 두세 시경에 잠을 잤다고 한다. 그는 오후와 저녁 시간을 모두 독서와 글쓰기로 보냈다. 노동자 재해 보험 공사는 법률가와 작가의 업을 병행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에 카프카는 이 직장을 놓치고 싶지 않다.
카프카는 프라하의 고립된 소수계층 출신이었다. 프라하 시민이면서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직장에서 매우 성실하게 일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은 곧 인정받아 카프카는 입사하고 5여 년 뒤에 승진을 하여 30여 명을 이끄는 지금의 중간급 관리가 되었다. 카프카는 이 직업을 먹고살기 위해 마지못해 한다고 했지만 투덜거렸지만 현실적으로 카프카는 성공한 사회인이었다. 카프카는 이후 프라하 사회에 모범적으로 동화된 유대인으로 인정받았고, 말년에 병세가 짙어져 일을 하지 못할 때에도 회사에서 나오는 연금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카프카가 일을 했던 노동자 재해 보험 공사는 정부가 운영하는 공영기업이었다. 이 회사는 노동자가 근무 중에 다치거나 병에 걸리거나 심하게는 사망하면 중립적으로 재해를 보상해 주고 기업과 노동자의 입장을 조절하는 기관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산업재해 보험이 있다. 업무 중 재해가 일어났을 때 가능한 빠르게 보상하고 일터로 다시 복귀하고 재활도 지원하는 국가가 시행하는 사회보험이다.
카프카가 살던 19세기 후반의 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땠을까? 19세기 후반은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산업 혁명을 통해 소규모 공장에서 대형 공장으로 산업 형태가 바뀌면서 도시화가 급속하게 일어났다.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많은 인구가 도시로 이동했다. 이들은 단순 노동 일자리로 몰렸고 이들의 주거 환경은 열악했다.
카프카는 법률자문가로서 노동자의 입장과 기업가의 입장을 조정하고 중재했다. 구체적으로 문서를 작성하고 결정문에 대해 이의를 신청하거나 반박문을 작성하는 일을 했다. 또한 노동자 재해 보험 공단의 홍보를 맡아 글을 쓰기도 했고 보험 공사를 변호하는 일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