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 없는 평행선
그는 베를린을 프라하의 해독제라고 칭할 정도로 베를린의 새로운 생활에 기뻐했다. 건강도 회복하고 아버지의 그늘에서도 벗어나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오직 도라 디아만트를 바라보며 새로운 인생을 계획했다. 둘은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라 디아만트의 아버지가 결혼에 반대했다. 딸의 부모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이해 간다. 20살이 갓 넘은 딸이 자신과 20살 차이가 나는 병약한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니. 시대와 문화를 떠나 보편적인 감성에서도 선을 넘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사랑에 나이가 어디 있고 국경이 어디 있나. 이 둘은 가족들의 결혼 승낙과 상관없이 주변의 온갖 반대에도 동거에 들어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한동안 카프카의 작품 활동 역시 매우 왕성했다. 하지만 그의 병세는 낳아지지 않았다. 그가 베를린으로 도라 디아만트와 이주했을 때는 독일이 1차 대전에서 패전했을 때다. 독일은 패전국이라는 이유로 살인적인 전쟁 보상금을 물어야 했고, 이로 인한 물가 상승률은 상상 초월했다. 빵 하나를 사기 위해 수레로 돈을 싣고 가야 할 정도였다. 그래도 카프카는 베를린의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얻을 수 있는 정신적 안정을 그곳에서 비로소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폐렴과 그에 따른 합병증으로 병세가 찢어져 가고, 동시에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만약 그때 프라하로 돌아간다면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온갖 비난과 질책을 받을지언정, 따듯한 식사는 보장되었을 텐데.. 그는 베를린에 남기를 고집했고, 그 결과 영양실조에 걸리고 만다. 카프카는 베를린의 병원에서 더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고 나서야 프라하 고향으로 갔다. 그는 병원과 요양소를 오가며 여러 치료를 시도했지만 자신의 41번째 생일이 되기 한 달 전, 도라 디아만트 곁에서 생과 이별했다. 죽기 전에 카프카는 도라 디아만트에게 작품을 전달하며 불에 태워달라고 부탁했고, 그의 유언에 따라 몇몇 작품은 소각했지만, 그녀가 간직하고 있던 작품은 유대인 탄압이 심해지면서 독일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압수된 작품도 있다고 한다.
카프카의 연예 비하인드 스토리 어떤가? 아마도 카프카의 아버지, 헤르만의 이야기 보다 좀 더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하다. 카프카가 선택한 사랑, 지금 우리의 시선은 카프카의 사랑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가 결혼생활을 통해 영혼의 안정을 찾았다면 80년대 주말 드라마와 같은 권위적이 아버지이지만 그래도 가정적이고 인간적인 휴먼드라마 한 편 정도는 나오지 않았을까? 그의 작품 속에서 보이지 않는 힘과 권력, 안갯속을 헤매는 듯한 불안과 막연한 실체 없는 두려움은 그의 결핍에서 나온 것 같다. 그 결핍을 성인이 되어 사랑과 독립으로 채우려 했지만 그 또한 녹록지 않았던 카프카의 삶. 그의 깊은 고뇌로 삶의 단면을 예리한 칼날처럼 묘사하는 작품이 나오고, 그 작품을 읽으며 우리의 삶을 다시 성찰할 수 있어, 한편으로는 고맙지만, 작가라는 모자와 완장을 떼어 버리고 인간 카프카를 바라봤을 때 왜 이리 처연하게 안타까워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