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득 떨어져 나가는 생각의 조각들
생각 많은 나는 생각 덕분에 살다가 또 생각 때문에 죽는다. 생각이란 것이 ‘생각만큼’ 제어되지 않는 날이 있다. 그래도 잠들기 전까지는 엉켜버린 생각의 양 끝을 찾아내 중간 매듭을 풀고 헤쳐서 죽 늘어진 생각의 실로 다시 만들어 놓는다. 그러면 편히 잠들 수 있다. 하지만 풀려고 애쓰다가 더 꼬이고 엉켜서 매듭이 늘어나 생각이 하나의 덩어리로 되면 가슴을 짓누른다. 이런 날이면 잠 못 이루고 뜬눈으로 밤을 보내거나 겨우 잠들었다 해도 악몽에 시달린다.
생각이 없는 건 때로는 심각하다. 생각이 없다는 말은 사회 초년생이나 미성숙한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도 있겠지만, 생각 없는 어른도 많고 생각이란 걸 아예 안 하고 자기만 좋자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 삶을 마음대로 산다는데 누가 뭐라나. 하지만 그 생각 없는 행동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건 생각해 볼 문제다.
생각이 많으면 심란하다. 한마디로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행동이 굼뜨고 결정을 잘못한다. 이걸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신중하고 성숙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 결정을 내릴 때까지, 행동으로 옮길 때까지 예열시간이 너무 길다. 그래서 생각하는 힘으로 예열만 하다가, 독을 품고 똬리만 틀고는 스르르 몸을 풀어 버린 일이 부지기수다. 그러면 또다시 생각에 빠진다. 그 뒤로 너무 당연하게 ‘불안’이 따라온다. 그렇게 생각의 무한대에 빠져서 뇌를 혹사한다. 실체 없는 생각과 불안의 풍선이 부풀러 올라 ‘팡’ 터지는 순간 모든 생각을 포기한다. ‘내 생각이 잘못된 거다.’라며 행동하지 않을 자기 합리화의 굴레에 빠져 자책과 불안에 다시 시달린다. 그러다 새로운 생각거리를 찾아 나선다. 위의 패턴을 고스란히 반복한다. 생각 많은 내가 겪는 생각 고문이다.
내 업은 생각이다. 글을 쓰고 외국어를 하고 외국어를 옮기는 일이 생각 없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하기는 내 삶의 창의적 도구이자 생계를 책임지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갉아먹기도 한다. 생각에 내가 잠식되기 전에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 적당 선을 찾아 적당하게 끝내는 방법은 없을까?
달린다. 힘들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힘들다. 종일 생각에 시달렸다. 갈등에 딜레마까지, 드라마 주인공들은 이러면 맞서 행동하거나, 조력자가 나타나거나 뭐든 하던데 나는 앉아서 종일 생각만 했다. 머리가 생각으로 외계인만큼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아 책상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다가 그 순간, 운동화를 신고 뛰어나왔다. 어둠 속을 달리던 내가 해가 쨍쨍한 대낮에 겁도 없이 뛰어나왔다. 방울방울 콧등에 땀이 차오르고 이마에는 땀이 흐른다. 닦아 낸다. 한 발 한 발 뛰어가니 나를 꼭꼭 가두고 있던 두터운 생각에 금이 간다. 그러더니 조각 하나가 툭 떨어진다. 좀 더 속도를 낸다. 조각들이 후두두 떨어져 나간다.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맨살만 남은 마음에 몸이 너무 가볍다. 왜 그렇게 그 생각에 매달렸을까? 그게 뭐라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하니 온몸의 에너지가 호흡에 집중한다. 생각이 저절로 멈춰진다. 신기하다. 갈등을 극복할 해결책이 머릿속에 툭 떠오른다. 캬!
이제 달리기만 한다.
달릴 때 무슨 생각하냐고 많이들 묻는데 잘 모르겠다. 어떤 생각인지는 잘 모른다. 그저 생각이 많은 채 달린다는 사실만 인지한다. 물론 가끔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혼자서 중얼거리며 원망하기도 하고 순간 맞대응하지 못한 말을 뒷북치기도 하지만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뛴다. 그러다 뛰기 시작하면 ‘맞다, 그거였지’ ‘그거 생각했었지’라고 떠오른다. 하지만 복잡하고 힘들게 나를 옥죄였던 생각들은 나의 달리기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 뒤처지고 버려져 길바닥에 나뒹굴 거리거나 한강에 둥둥 떠내려간다. 달리기 하면 살만 빠지는 게 아니라, 생각도 빠진다. 몸과 마음이 탄탄해지는 느낌이다.
이제 달리기에만 집중한다.
유일하게 생각을 멈출 수 있는 시간, 마치 속세에서 벗어나 템플 스테이를 하고 명상을 하는 것 같다. 생각을 멈출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을 찾았다니! 한떄는 독서와 영화와 드라마가 생각을 멈추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길이였는데, 안타깝게도 이 분야를 업으로 한 이후로는 책 읽고 영상 보는 걸 예전만큼 즐길 수 없어졌다. 그냥 봐야지 하면서 보다가도 어느새 캐릭터를 분석하고 구성을 쪼개 보고 앞으로 일들을 예측한다. 그렇게 한동안 쉴 곳을 찾지 못해 생각이 점점 비대해져 지붕을 뚫고 나가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렇게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달리기라는 신세계를 만나다니, 오늘은 더 뛰어 볼까?!
다리가 아픈 건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얼굴이 미치게 따가워 안절부절이다. 충동적으로 뛰어나갔던 시간이 한여름의 오후 3시. 모자 하나 믿고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대가다. 생각 많으면 뭐 하냐고! 이렇게 허당인걸.... 그리고 어쩌자고 그렇게 오래 많이 길게 뛰었는지. 집에는 왜 그 흔한 마스크 팩 하나 없는지. 집 앞에 나가 사 오려고 하는데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휴 가뜩이나 까만 얼굴 더 까매지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