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너를 어찌 잊을 수 있겠니?
음주 가무는 나와 상극이다. 코로나 이후로 여흥 문화가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춤과 노래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그룹의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때면 만나는 초반부터 어떻게 도망 나갈까 생각한다. 신바람 민족의 후예가 맞기는 하는데 나에게만큼은 그런 신기가 유전되지 않았나 보다. 그렇다고 음악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음악을 크게 듣는 걸 너무 좋아해서 바다 건너 살았을 때는 음악을 듣기 위해 클럽을 갔다. 일부러 스피커 근처에 자리를 잡아 우퍼의 소리를 온몸으로 맞으며 외국 생활의 스트레스를 우퍼에서 나오는 음표와 함께 날려 버렸다. 아쉽게도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그런 여유를 얻지 못했다. 한국 클럽은 내 나이를 받아주지 않을 테고 (시도는 해보지도 않았지만 알아서 젊은 친구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고) 집에서는 층간 소음과 측간 소음으로 괜한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방법은 차를 타고 오갈 때 음악을 크게 듣는 거다. 하지만 대부분 내 차에는 자주 누군가가 함께 있었고 그들은 내 플레이 리스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음악 크게 틀 수가 없었다. 하루는 오롯이 내 음악을 크게 듣고 싶어서 집에서 인천 공항까지 왕복했다. 시도는 좋았지만, 교통 체증에 마구잡이 운전자들 때문에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무슨 음악 들어?’
근황을 물어온 친구에게 달리기를 한다고 하니 대뜸 그 질문이 나왔다.
‘음악은 아니고 팝 캐스트나 토크쇼 ’
그러면서 자주 듣는 팝 캐스트와 채널 몇 개를 알려줬는데, 순간 나 자신이 몹시 멍청하게 느껴졌다. 왜 나는 음악 들을 생각을 못 했을까?
처음 달리기를 했을 때는 음악은커녕 옷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았었고, 그 이후로 줄 달린 이어폰을 주섬주섬 챙겨 나갔지만, 줄이 걸리적거려 달리기용으로 가장 먼저 구매한 장비가 블루투스 이어폰이었다. 그렇게 장비를 챙기고도 음악을 잊었다니? 삶이 퍽퍽했나? 음악을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들을 생각조차 못 했다니!
유튜브로 나오는 각종 음악을 미리 선별해서 시범 삼아 들으며 달리기를 했다. 클래식, 가곡, 국악, 힐링 주파수, 재즈, 가요, 7080, 팝, 올디, 동요, EDM, 테크노, 하우스, 힙합 등등 종류를 일일이 말하는 건 별 의미 없고, 그중에 달리기에 딱 맞는 걸 찾아낸 기뻤다. 내 발을 재빠르게 움직이게 하는 음악과 축축 처지게 하는 음악이 있다는 거다.
보통 달리기를 할 때, 집을 기준으로 한강 다리 3개 정도를 지나 돌아오면 대략 6-7KM 정도가 된다. 집에서 멀어질 때 음악과 집에서 돌아올 때 음악은 다르다. 컨디션도 기분도 다르기에 다른 음악을 들어야 꾸준하게 달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집을 등지고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온몸의 근육과 신경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고 속도를 낸다. 이전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기록을 내고 싶다는 생각에 욕심내어 뛰기도 하고 그렇게 기록이 잘 나오면 다리가 자동으로 돌아가는 바퀴처럼 반응한다. 이 구간에는 무조건 EDM이다. 그 음악을 들으면 뛸 수밖에 없다. 멈추고 싶은 맘도 들지 않는다. 그러다 목표인 세 번째 한강 다리를 찍고 뒤돌아 집을 향해 달릴 때면 몸은 힘들지만, 목표를 달성했다는 뿌듯함과 이제는 아무리 힘들어도 멈추지 못하고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기록이고 뭐고 그저 달리기만 한다. 그럴 때는 피아노 클래식을 듣는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을 달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숨넘어가지 않게 다리 풀려 넘어지지 않게 평화롭게 달린다.
나 홀로! 음악을 들으며! 뛸 수 있다니! 이런 호사스러운 삼박자! 달리기가 이전에는 그저 고통이었는데 음악 덕분에 이토록 즐길 수 있다니 여전히 달리기에 감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