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有用한 벌이와
무용無用한 마감의 외줄 타기

하는 건 많은데 되는 건 없는 N 잡러의 1일 휴가

by VIVA

언제부터인가 나는 N 잡러가 되었다.

생계와 시간의 압박이라는 깊은 바다에 빠져

수면 위로 떠오르려 팔다리를 허우적 거렸다.

그들의 움직임이 무색하게

짜다 못해 쓰라린 물이 입과 귀와 코로 들어왔다.

가라앉았다 떠올랐다를 무한 반복하면서

살아 남는데 온 에너지를 다했다.


그 덕분에 생계는 유지되었고 여전히 살아 있다.

지금은 파도도 잠잠해졌고

수영하면 닿을 듯한 모래사장도 눈에 보인다.

팔다리를 더는 허우적 거리지 않고

온 몸의 긴장을 푼다. 몸이 쑤욱 수면으로 오른다.

온몸을 잔잔한 바닷물의 흐름에 맡겨 놓고

언제 밀려올지 모를 파도를 경계하며

태양을 올려다본다.

숨 쉴 만하니 꾹꾹 눌러 놓은 생각이

거침없이 올라온다.

유용 (有用)한 벌이와 무용(無用) 한 마감의 외줄 타기,

언제까지 해야 할까?



하는 건 많다, 잡다할 정도로.

수첩에 스케줄을 적고 다 했을 때

체크하는 것으로 작은 성취감을 찾기에

수첩은 언제나 내 머리만큼 빽빽하게 뭔가 적혀 있다.

생계를 위한 경제 활동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취미요 속으로는 이직을 생각하는

자기 계발로 하루가 바쁘게 돌아간다.

오늘, 몇 달 뒤면 나의 노력과 시간이

무용(無用)했다고 밝혀질 것이 분명한

드라마 공모전에 또 단막극을 제출하고

동네 도서관에 멍하니 앉아 있다.

마감의 홀가분함도 아주 잠시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진진한 성격에 진지함을 더해

바닥에 가라앉을 때만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선택했어!' 이 말은 멋지게 들린다.

누군가 무엇인가를 하기로 선택했다고 하면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결단력 있고 추진력 있고

뭔가를 해낼 것 같은 희망의 아우라로 근사해 보인다.

'포기했어!' 이 말은 슬프게 들린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 별 다른 질문 없이

상대의 말을 우선 다 들어주는데 급급하다.

포기를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 싶으니까.


그런데 '포기했어'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런 사람은 때로는

자기 합리화에 빠진 이솝 우화의 여우 같았고

때로는 아직 배고프지 않은

여유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내가 무엇인가를 포기할 때 늘 그랬던 것처럼....


'드라마 작가가 될 거야'라고 선언하고

교육원에 도전한 게 연도도 가물할 정도로

까마득한 옛날이 되었다.

매주 한번 마포에서 서강대교를 과속하며 건너던 일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때까지는 포기라는 걸 몰랐는데...


일요일 집 청소를 하면서 손도 닫지 않는

책장 꼭대기에 쌓여있는 창작반 작품집을 한 권 내렸다.

창작반 진학 소식에

개천에서 용 된 듯 기뻤던 순간이 떠올랐다.

왈칵 눈물이 나온 것도 잠시,

같은 기수의 동기들이 떠올랐다.

작품집을 함께 냈던 문우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 동기들 말고 내 앞으로 내 뒤로 창작반을 수료한

그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드라마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고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집중도 포기도 못한 채

양쪽에 다리 걸고 갈팡질팡하고 있을까?


선택과 포기는 동전의 양면 같다.

선택과 동시에 무엇인가는 자동 포기가 된다.

나는 도서관 창문으로 보이는

정원의 책더미 조각상을 물끄러미 보면서

무엇인가를 하나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합리화의 달인처럼 나는 포기는 실패가 아니라고

포기의 이유를 야금야금 들이대면서 나를 설득하다가

포기라는 단어 대신 선택의 단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그래 나는 돈벌이가 되는 글을 쓰겠어, 그래 이거야!'


선택했는데 전혀 멋져 보이지 않는다.

박수와 응원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나 살면서 수없이 많은 포기를 했는데

나 왜 이토록 작아 보이는걸까...


포기를 실패와 같은 맥락으로 본다면

패션 디자인, 웹 디자인, 출판사, 바이올린, 첼로, 노래, 방송 댄스,

건축, 투자, 작곡, 뜨개질,피아노 연주까지

내가 포기하고 실패한 것들이다.

기억을 파헤쳐 보면 분명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드라마 작가까지 ?

그러면 나는 하다 말다 그만두고 마는 프로 포기러가 되는 걸까?

한건 정말 많은데 진심 되는건 없는

도전하다 미끄러져 포기하는 인간이 되는 걸까?

이런 맥락에서 생각은 결국 이 질문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거 포기한다고 뭐 달라져?'


나는 얼마 남지 않는 생의 시간과 에너지를

냉정하게 저울질하고 있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사회생활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상태가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될 지 모를 일이고

나의 정신상태가 세대를 아우르는

통합된 영혼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끝없이 업데이트하고 나를 닦달해야 하는

이 상태가 힘든 건 사실이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보장 없는 일로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에너지를 써버린다는 것은

실로 무용한 짓이다.


여기에 불을 붙인 사람은 다름 아닌 한 출판사 대표였다.

얼마 전 근황을 묻는 전화를 하면서

그는 묘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 쓴다고 써버린 시간에

책을 썼으면 몇 권은 더 나왔을 텐데요...'

그의 말꼬리는 물안개속으로 흐릿하게 사라졌지만

그 흔적만으로도 내 가슴은 무너졌다.


나, 정말 드라마 작가 진즉에 포기했어야 했나?

그 시간에 책 썼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그에게 반박하며 하고 싶은 말이

전화를 끊고 거침없이 혼잣말로 나왔다.

그때 사실 나는 어는 방송 아카데미의 드라마 작가 과정

수강 표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강 신청 버튼을 누를 까 말까 했었는데

포기하지 못하는 꿈,

선택받지 못하는 나의 글,

사라진 기회와 시간들

이루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될 거라는 희망..

그리고 침잠의 시간.


'나는 무용(無用) 한 것을 좋아하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변요한의 대사 중에 마음에 와닿는 대사다.

나는 왜 이토록 무용(無用) 한 일에 온 마음을 다하는 걸까?

끝없이 굴러 내려오는 시지프의 바위를

다시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스스로 선물한 휴일을 이렇게 나는 선택과 포기로 고민하고 있다.

드라마 작가 과정 수강 버튼을 누를까 말까...

수강하면 뭐 달라지나?

그 시간에 보고 쓰는게 더 좋을 듯 한데 ..

거기 공모전 당선율이 제법 높다는데

아니 작가 교육원 말고 어딜 또 더 다녀?

수없는 목소리가 머리 속에 울려 온다.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불안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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