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전 증후군

치료할 수 있을까요?

by VIVA

마감을 얼마 앞두고 두뇌 과잉 활동으로

또 쓸데없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증상을 이렇게 스스로 진단했다.

'마감 전 증후군 '

그러면서 속으로 이름 한번 잘 가져다 붙였다고

중얼거리며 일을 계속했다.

마감이 코 앞에 다가오면서 무시하려 했지만

이 단어는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이 증상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났다.

이 또한 마감 전 증후군의 하나일 것이 분명한데....


마감 전 증후군은 마감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이 다르다.

마감이 3개월 전후로 남았다면

증후군이라 할 것도 없다.

일이 들어왔다는 기쁨과 안도감에 취해서

어떤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도 들지 않는다.

그 기세로 앞으로 해내야 할 3개월의 일을 나름 분배한다.

하루에 얼마만큼의 양을 해내야 할지,

중간에 개인적인 시간은 얼마나 있을지

혹시나 계획을 지키지 못하면 언제 보충해야 할지 등

시간의 완충지대까지 완벽하게 (?) 설계한다.

머릿속 건물이 언젠가는

와르르 무너질 걸 직감하면서도,

그 계획표를 벅벅 찢어 작업실 바닥에

던져 버릴 것을 예상하면서도

반드시 계획을 지키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뿌듯한 계획표 앞에 짜릿한 미소를 지으며

하루를 그렇게 보낸다.

단 한 자도 쓰지 않은 채 말이지.....


스스로 심각해진다고 생각이 드는 시기는

마감 3주 전 정도부터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남은 양의 일을

해 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이

팽팽하게 맞서는 시기다.

나는 이때부터 주변에 조금씩 상황을 알리면서

외부세계와 차단하기 시작한다.

'응, 나 곧 마감이라서....'

'마감 끝나고 해 줄게...'

'마감 끝나고 어때?'


이 말을 뱉는 순간부터 스스로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외부에서 더 이상 해소할 기회를

내 입으로 차 버린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친구와 지인들은 진심으로

나에게 마감을 마감하는 것을 응원하면서

더는 방해하지 않는다.

이후 행여라도 내가 그들에게 먼저 연락하면

'야, 너 마감인데, 괜찮아? '

이러면서 나를 다시 밀폐된 작업실로 밀어 넣는다.


마감이 끝난 지금 나는

이 즐거운 잉여시간을 마감 전 증후군을

단계별로 분석해 보기로 했다.


1. 갑자기 청소가 하고 싶어 진다.

평소에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마감을 앞두면 왜 쓸데없이 갑자기 서랍 정리를 시작하고

펜을 일일이 다 꺼내서 써보고 나오지 않는 것을 버리는지...

몇 벌 되지도 않는 옷을 죄다 꺼내서

버릴까 말까 누굴 줄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하는지...

그 옷들이 나를 전혀 방해하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서랍과 드레스룸에서 멈추면 좋을 텐데

나의 청소행위는 신발장과 창고 정리

그리고 이불 세탁으로 확장된다.

더 이상 버릴 것도 없는

텅 빈 신발장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이사할 때마다 버릴까 말까 고민했던 물건들을

창고에서 꺼내 다시 한번 똑같은 고민을 하고

상자를 덮어 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이불은 다르다.

멀쩡하게 잘 쓰는 뽀송뽀송한 이불을

굳이 빨아서 실내에 넌다.

세제 냄새가 집안 가득해지면

알 수 없는 뿌듯함에 사로 잡힌다.

몸은 되지만 정리된 주변 환경을 보면서

성취감과 안정을 찾으니

청소하기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2. 쓸데없는 필요를 만들어 낸다.

'이거 언제 샀지? ' ' 저건 왜 샀지?'

이런 물건들을 보면 대부분 마감을 앞두고

구매 버튼을 누른 제품들이다.

왜! 마감을 앞두고는

왜! 홈쇼핑의 품절 임박 멘트에 절절매는 사람처럼

왜! 나의 필요가 절박해지는 걸까?


마감이 가까워질수록 스스로 고립한 나는

택배 기사님의 배송 문자만으로

내가 아직은 외부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이때 구매한 제품이 책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책은 챙겨두는 맛이 있으니까.

책 아닌 대부분의 제품은

햇빛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드레스룸 구석이나

재활용 중고 사이트 나 무료 나눔 코너로 직진하고 만다.


3. 꼬여 버린 인간관계를 되씹는다.

여기에서 관계는 새로운 관계가 아니다.

단절되어 혼자된 나는 나만의 해석으로

관계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건 글을 쓰고 번역을 하면서

두뇌가 과다하게 활동하기 때문인데

결과적으로 예민한 두뇌 활동은

과거의 기억 저장소를 자극한다.

이 때는 심리적으로 안정상태가 아니기에

과거의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더 나쁘게 해석되고

결국 후회와 자책으로 스스로를 괴롭힌다.

기억 속의 상대는 기억 조차 하지 못하는 일들로

스스로를 괴롭힌다.

마감의 불안과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더 큰 불안의 감정을 대입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이성적인 판단은 왜 꼭 마감이 지나고 나서야 드는걸까

4. 폭식

마음을 괴롭히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몸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머리를 쓰는 일은 어떤 신체 활동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의식주중에서 '식'에 별 관심이 없지만

마감을 앞두면 갑자기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건강을 위한 먹거리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당장의 불안을 잠재우면 그만인

고칼로리 음식으로 눈이 돌아간다.

그렇게 턱관절과 위 근육을 실컷 운동시키고 나면

피곤함과 노곤함이 온몸에 전달된다.

스르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감기는 눈....

그렇게 먹고 자는 것으로

불안을 잠재우는 단계를 지나고 나면

다시 후회와 자책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5. 카페인 과다 흡입과 절식

이건 마감 거의 1주일에서

2-3일 전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먹으면 졸리니까 먹지 말라 어깃장을 부리면서

카페인으로 두뇌를 각성시키고

몸에 이미 차고 넘치는 지방으로

신진대사를 유지하라 명령한다.

이게 과해지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가슴이 쿵쿵거리는데

귀에서 내 심장소리가 느껴질 정도가 된다.

이 정도면 숨이 가빠지기에

애써 긴 들숨과 날숨으로 몸과 마음을 진정시킨다.

이때 즈음되면 말 그대로 촌각을 다투면서

무지 집중해야 하기에

잘하고 못하는 결과를 떠나

마감 사수, 그 목적 만을 바라보게 된다.


6. 마감 이후의 시간을 계획한다.

이건 사실 일을 의뢰받고 나서부터

마감하기 바로 전날까지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일이다.

'이번 마감만 끝나면' '이것만 다하고 나면'

이런 전제 조건으로

스트레스가 생길 때마다 수첩에다가 적는다.

거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운동하기, 머리 자르기, 밀린 책 읽기,

드라마 몰아보기,핫 플레이스 가보기,

새로운 작품 또는 글 기획 하기 등등등....


하지만 마감을 끝낸 지금 나는

이런 계획을 세우기나 했었나 싶을 정도로

머리가 백지처럼 하얗다.

수첩을 넘겨 보고 나서야

내가 이런 계획을 세웠었나 싶을 정도다.

이 기대는 마치 처음에 마감 지키기 계획을 세운 것만큼 무의미하게 된다


'마감 전 증후군'

이 증상의 모든 원인은 바로 불안이다.

마감일이 많이 남았을 때의 불안은

결과물이 좋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다.

실력에 대한 의심이 솟아날 때 동반되는 불안을 말한다.

하지만 마감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실력과 상관없이

우선은 마감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에 사로 잡힌다.

이 순간을 통제하지 못하면 불안이 공포로 확대되기도 한다.

아드레 날린과 도파민의 과다분비가 원인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는 것이다.

자기 통제가 가능한 청소를 하면서

부글거리는 마음을 잠재우고

온라인 쇼핑으로 물건을 고르면서 딴청을 하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마음을 쓰면서

불안한 감정을 털어내는 거다.

간혹 누군가는 마감을 앞두고

아예 실컷 놀아버린다고도 하는데

그런 베짱이라고는 미세먼지만큼 없는 나로서는

상상 불가일 뿐이다.

나는 4면의 벽에 둘러쌓인

나의 작은 작업실에서 불안을 해소한다.


프리랜서와 마감은 절대적인 관계다.

마감 없는 프리랜서는 백수일뿐이다.

백수일 때 누군가 마감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하면

그 또한 부러워진다.

하지만 막상 마감을 앞두고는

이런 일을 맡지 않으리라며

다시 한번 비이성적인 판단으로

불안을 잠재우려 아등바등한다.

마감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일을 하라 한다.

나 또한 그렇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계획보다 빨리 일을 해도

왜! 왜! 왜! 하루가 늘 부족한 걸까.....


마감전 증후군은 심리학자나

정신의학자들이 말하는 질병이 전혀 아니다.

그렇다고 프리랜서들이 달고 사는 직업병도 아니다.

그저 한정된 시간 안에 일을 해내야 하는

불안이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행동들일뿐이다.

이걸 확대해서 말하자면

결국 시간의 압박을 견디는 행태라 할 수 있다.


시간의 압박이 꼭 마감에만 있는 건 아니다.

꼬꼬마 시절 학교 숙제가 그랬고

학기별 두세 번 있었던 학교 시험도 포함된다.

그리고 모의고사, 대입 수험 시험,

각종 공인 시험 이런 것들도 사실 마감에 포함될 수 있다.

성인이 되면 직업적으로 해내야 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와 과제들.

여기에 시간과 결부되지 않은 것들은 하나도 없다.

결국 모든 게 시간과의 싸움이고

그 시간을 버티는 나 자신과의 고군분투이다.


불안을 견디는 힘은

실력과 시간을 관리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결국 마감을 앞두고 불안에 벌벌 떨 수밖에 없다.


이번 마감에는 이러한 증후군을

나름 머리로 분석하면서

불안과 부족한 나의 실력을 인정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다행히도 택배 기사님의 배송 알림 문자가

지난 번 만큼 자주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말 포기하지 못한 아이템이 하나 있었는데

원가 15만 원 상당의 원피스로

여리 여리한 피팅모델이 넓은 치마폭을 휘날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로맨틱했다.

결정적으로 구매 버튼을 누르게 된 이유는 가격이었다.

전 시즌 상품이라면서

가격이 2만 원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기쁘고 신났다.

이 푸른빛 원피스는

마감의 불안을 푸른 하늘의 몽글거리는 구름으로 변신시켰다.

잘 샀다면서 현명하고 스마트한 구매를 칭찬했다.


이 원피스는 마감이 지나고 1주일이 지나 도착했다.

원피스를 구매했는지 인지조차 못하고 있을 때였다.

현관 문 앞에 놓인 은빛도 잿빛도 아닌 택배 봉투.

'파란 하늘의 몽글거리는 감성의 원피스'가 떠올랐다.

신발을 하늘로 날리며 집안으로 후두둑 달려 들어와

두꺼운 택배 봉지를 있는 힘껏 우두둑 뜯어냈다.

빨리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

한참을 원단을 만지작 거리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바느질, 원단, 색감, 디자인...

모든 것이 원래부터 2만 원대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허탈했다. 반품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혹시 입어 보면 또 다른 느낌이 아닐까 하는

정말 마지막 남은 희망으로 옷을 입어 봤다.


아.........

더 이상의 말은 안 하겠다.

아니 말이 나오지도 않는다.

거울을 보면서 결심했다.

마감 전 증후군으로 구매 버튼 앞에서 망설일 때면

이 원피스를 꺼내 입으리라고.

불안에 잠식된 이성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두 눈 똑똑히 보라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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