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2일 금요일, 하늘의 별이 된 엄마의 장례 2일차였어요.
본격적인 장례 일정이 시작된 날이었죠. 아침부터 빈소에는 가족들이 함께해 주었고, 늦은 밤부터 아침까지 가족들과 부고 문자를 정리해 지인들에게 소식을 알렸어요.
어디까지 소식을 전해야 할까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소식을 듣고 와준다면 기꺼이 슬픔을 함께해 줄 이들이고 소식을 듣고도 오지 않는다면 인연이 여기까지인 거다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큰 일을 겪으며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는 것도 실감이 났죠.
엄마의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과 교회 친구분들께는 딸인 제가 직접 전화를 드렸어요. 엄마가 항암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하늘로 떠났다는 소식에 모두 놀랐고, 한달음에 달려오셨죠.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엄마의 친구들, 이모들을 보니 눈물이 터져나왔어요.
엄마를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엄마 완전 인기 쟁이었네. 엄마는 알고 있었어? 이렇게 인기 많았는지? 하며 혼잣말을 했어요.
실질적으로는 장례 1일차였고, 이 날은 빈소를 차리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적응하는 데 하루를 다 보낸 것 같아요. 외가, 친가 가족들과 친지들, 사촌들이 함께 장례 절차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상조 서비스를 쓰지 않기로 한 것도 있었죠.
다들 아빠의 식사를 제일 잘 챙겨야 한다고 당부했기 때문에 저는 식사시간이 되었을 때 아빠가 손님과 함께 계시면, 같이 식사를 하시며 이야기 나누시라며 식사를 준비해 드렸어요.
그러다 오후에 잠시 혼자 빈소에 앉아 있던 순간이 있었어요. 상복을 입고 가만히 앉아 엄마의 영정 사진을 보고 있으니, 이 모든 게 그저 꿈만 같고 믿어지지도 않더군요.
사실, 엄마는 자신의 상태와 여명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했어요. 한 번도 제대로 알려드리지 않았으니까요. 엄마가 삶과 치료에 대한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섣불리 알려드렸다가 좌절하고 낙망하셔서 아예 모든 치료를 거부해버릴까 겁도 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엄마가 떠나버리고 나니, 엄마에게 여명을 알려드렸어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이 되었어요. 임종 면회를 하고도 3일의 시간 동안 엄마는 어떻게든 깨어나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남은 시간에 대해 알려드렸다면, 엄마가 지금 이 순간할 수 있는 것들에 더 집중하며, 좋아하는 사람들, 보고 싶은 사람들도 미루지 말고, 다음을 기약하지 말고 함께하는 소소한 행복들을 많이 쌓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은 그래서 마지막으로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며 이제 아프지 말고 푹 쉬어도 된다고 이야기 한 것이 엄마의 등을 떠민 것은 아닐까 내내 마음 한편의 죄책감으로 남아있어요.
다 낫고 만나자고 치료하고 하면 된다고 모든 것을 치료 이후로 미루다가, 남은 시간을 내내 치료만 하다 엄마가 떠난 것은 아닐까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가득했어요.
그런 잠깐의 시간도 지나가고 여기저기서 "상주님"을 부르면 사인을 하고, 확인을 하고, 제가 잘 모르는 친가, 외가 식구들의 손님들에게도 인사를 했어요. 먼 길을 찾아와주신 모든 분들께 그저 감사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정신없이 밤이 늦도록 손님들이 찾아와주셨고, 장례 2일차가 저물어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