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3일 토요일, 하늘의 별이 된 엄마의 장례 3일차(실제 장례 둘째날)였어요.
실제 장례 둘째 날에 가장 중요한 일정은 입관입니다. 관을 덮기 전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기도 하고, 고인과 이별하는 시간이기도 해서, 입관할 때 많이 슬퍼한다고 들었어요.
저는 20년 전에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입관을 본 적이 있어요. 친할아버지는 집에서 갑작스레 돌아가셨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친할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에 망설임 없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주무시는 듯 편안한 친할아버지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20년 만에 공교롭게도 같은 곳에서 엄마의 입관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입관을 보러 가려고 준비하는 도중, 남편과 사촌 언니들이 다가오더니 우황청심환을 건네주었어요. 영문도 모르고 일단 먹으라는 얘기에 먹었고, 참 잘했다는 칭찬을 받았죠.
딸아이는 할머니의 마지막 얼굴이 보고 싶기도 한데 무섭기도 하다 하여 그러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딸아이는 오지 말라고 하길 잘한 것 같아요.
입관이 시작되고 가족들이 돌아가며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어요.
"여보야, 사랑해" - 아빠
아빠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얼굴을 어루만지기도 하며 오랜 세월 결혼해 살면서 힘든 일도 좋은 일도 많았지만, 함께해서 행복했다며 인사를 했어요.
"엄마 치료받느라 고생 많았지~
고맙고 미안해..
내가 딸 잘 키울게~
엄마 우리 꼭 다시 만나~"
임종 면회도 했고 많은 이야기를 미리 하고 눈물도 흘렸다 생각했는데.. 입관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지더군요. 언니들이 우황청심환을 챙겨준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제수씨,
우리에게 가족으로 와줘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이제 아픔 없는 곳에서
평안하시길 빕니다." - 큰아버지
큰아버지의 인사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어요. 평소 무뚝뚝한 분이라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누구보다 마음 따뜻한 분이시거든요. 그 마음이 인사에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어요.
엄마의 형제들과 다른 가족들도 차례로 인사를 하고, 이제 관이 닫혔어요.
엄마의 마지막 얼굴, 그런데 제가 알던 엄마의 얼굴이 아니더라고요. 딸아이를 데려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엄마는 이미 시반이 진행되어 곳곳이 검게 변해 있었고, 오랜 시간 항암을 해서 곱게 웃고 있던 예쁜 엄마의 영정 사진과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 누워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엄마가 정말 여기에 없구나 하는 사실이 실감이 났어요. 엄마의 죽음을 제대로 목도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른 가족들과 입관에 방해가 될까 참고 있던 울음이 입관을 마치고 나오며 터져 나왔고, 그 몇 분의 순간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남편의 손을 잡고 정말 정신없이 울었던 것 같아요. 울부짖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네요.
엄마를 제일 많이 닮은 막내 외삼촌이 저를 꼭 안아주며 이야기했어요.
"엄마 좋은 곳에 가셨을 거야.
엄마 많이 아팠잖아.
이제 안 아프실 거야.
엄마 생각나면 삼촌한테 전화해." - 막내 외삼촌
그렇게 입관을 마치고 다시 빈소 앞에 앉았어요. 아무리 이틀째 앉아 있어도 적응되지 않았던 상주 자리.. 엄마의 영정사진 앞으로 아흔이 넘은 외할머니가 꽃을 주고 계셨어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절대 입관과 화장을 봐서는 안 된다는 동네 병원 원장님의 당부와 자식들의 만류에 입관을 보지 않았어요.
"우리 딸,
네 꽃 좋아 하제..." - 외할머니
아흔이 넘은 외할머니가 큰 딸(엄마)을 앞세운 슬픔은 어떤 걸까, 감히 가늠도 안됐어요. 엄마의 상태를 정확히 알려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갑작스러웠을 이별이었어요. 어쩌면 그래서 더욱 딸의 마지막 얼굴을 보고 싶었을 텐데... 자식이 먼저 가는 것이 부모에게 가장 큰 불효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군요.
장례를 치르며 가장 슬프고 참담했던 순간은 "입관"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고 "이 세상에 엄마는 없구나"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누구보다 더 애끊는 슬픔을 앓고 있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마음에 선명히 남아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