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4학년이었던 어느 날,
제가 딸아이보다 10~20분 정도 먼저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 날이 있었어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저도 많이 긴장했지요. 학교 가방을 다 챙겨주고, 입을 옷도 미리 말해주고, 아침 먹는 것을 보고는 현관 앞에서 딸아이와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출근길 내내 CCTV를 보고 있었어요.
딸아이가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는 CCTV 앞에서 작은 손을 흔들었어요.
"엄마, 안녕~! "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대답해 주었지만,
렌즈 너머로 엄마에게 인사하던 딸아이의 말간 얼굴이 괜히 마음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저는 아이를 맡기는 동안 늘 불안했습니다.
어린이집과 친정엄마에게 맡길 때도,
시어머니에게 맡길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어요.
제가 아이 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늘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시터를 쓰기 시작한 뒤로는
아이가 시터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CCTV를 켜서 확인했습니다.
화면 속 딸아이의 표정을 확대해 보며,
아이가 오늘은 좀 피곤한가?
선생님 말투가 좀 심드렁한 건 아닌가?
혼자 걱정이 많은 날도 있었지요.
아이의 표정을 읽어보려 할수록, 제 마음은 불안해졌어요. 저는 아이를 걱정한다기 보다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CCTV는 두려움과 불안에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보이지 않는 공간도 있었고, 그것을 제가 계속 볼 수도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제가 거기에 매여 있더군요.
결국 아이를 맡긴다는 건,
제가 직접 볼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인정하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갑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
누군가를 완벽하게 믿을 수 없더라도,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대신 그 시간에도 아이는 자라고 있고,
저 역시 일하는 엄마로서 하루를 살아내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려 합니다.
그날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딸아이가 CCTV 앞에서 손을 흔들며 "엄마, 안녕~! " 을 외치는 장면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날의 웃음이, 오늘을 버티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딸아이도, 저도 조금 자라고 있어요.
부모도 처음이라 서툴지만,
우리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마음을 잇다 : 마잇 윤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