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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이치료사 윤쌤 Jul 26. 2024

놀이치료사도 엄마는 처음이라...

   저는 놀이치료사, 청소년상담사로 일한 지 4년째 되던 해에 딸아이를 출산했어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일하며 놀이치료와 청소년상담, 부모상담을 활발하게 진행했는데요. 지금 돌아보면, 전적으로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눈으로 부모를 바라보았고, 그것이 부모들에게는 야속해 보였을 것 같아요. 부모상담을 진행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는 "왜 부모가 아이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몰라줄까" 하는 답답함이 내재되어 있었어요.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면 다 보일 텐데" 하면서요.


   미디어에서 많이 보았던 좋은 엄마의 이미지(떼쓰는 아이도 자애롭게 달래주고, 어지럽힌 집안도 아이와 놀이를 하며 정리하고,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뚝딱 간식을 만들어 내는 원더우먼)에 놀이치료사, 청소년상담사로 일한 직업적 전문성이 있으니 난 엄마를 정말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딸아이를 낳고 보니, 출산과 육아는 정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영역이더군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할 때의 심정은 과거에 부모상담 하던 나의 모든 순간을 찾아가 입을 틀어막고 싶었어요. 이론으로 알고 있었던 것과 현실은 그만큼 달랐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육아였거든요. 어떻게 해도 늘 누군가에게는 혼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매일 들었어요. 그런데 애석하게도 엄마는 그만둘 수도, 사표를 쓸 수도 없더라고요. 어쨌거나 나에게 찾아와 준 석 같은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보석으로 잘 키워내야 하는 것이 엄마라는 운명이니까요.


   누군가 "딸아이는 좋겠어요. 엄마가 놀이치료사 라서요. 얼마나 잘 놀아주겠어요."라고 이야기할 때면,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듯 켁 막힙니다. 직업이 놀이치료사, 청소년상담사일 뿐, 집에서는 저도 평범한 엄마라서요. 오히려 아는 것이 많아 딸아이가 잠들고 나면 두배로 자책하게 되기도 해요.


   그렇게 딸아이는 10살이 되었고, 저는 하루에도 10번 정도는 실수하는 현실 엄마로 살아가고 있어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딸아이와 함께 행복한 평범한 엄마가 되기로 했거든요.


   언젠가 대학원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여러분은 한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상담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가정에서는 딸, 아내, 엄마, 며느리라는 책임이 따를 겁니다.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이제부터 낙제는 면하자!라는 마음 가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저녁, 저는 우리 아들이 <엄마! 요즘 엄마 영역이 낙제예요!>라고 경고를 주어, 우리 아들과 데이트를 하러 갑니다. 엄마 영역이 낙제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개선하러 가요. 여러분 앞으로 저의 이야기를 잘 기억하며 살아가길 바라요.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낙제는 면하자! 그걸로 충분합니다."


   놀이치료사도 엄마는 처음이라 현실 육아는 엉망인데 그럼에도 딸아이는 엄마인 저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냅니다. 내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그래서 이렇게 추천합니다. "결혼은 잘 모르겠는데, 아이는 꼭 낳아. 나의 인생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되는 기분을 꼭 알았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해요.


   육아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몰랐을 이 세계에 초대받은 것 같아요.  생명이 잉태되어 태어나고 자라나는 경이로운 모든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제 생애 가장 큰 축복이라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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