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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이치료사 윤쌤 Aug 02. 2024

딸 생일 : 잊을 수 없는 나의 출산기념일

   2014년 초여름, 결혼하고 그 다음해에 임신을 했어요. 저는 임신을 하는 과정도 임신기간도 굉장히 수월했어요. 임신 초기 부정출혈로 응급실을 다녀오긴 했지만, 입덧도 거의 없었고, 막달에 배가 불러오며 허리 통증과 골반 통증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트러블도 없었거든요. 호르몬의 영향인지 평소보다 피부도 좋았고, 컨디션도 좋았어요. 친한 지인들도 "너를 보니 임신이 할만해 보여!"라고 할 정도였죠.


   그런데 임신해서 고생하는 총량은 다 똑같다는 말이 있죠. 저는 그 모든 고생을 출산에 몰아서 한 것 같았어요. 예정일 15일 전 정기검진에서 자궁문이 열렸고, 아기 머리가 만져진다며 이미 분만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어요. 예정일 5일 전까지 출근하려던 초산모의 야무진 계획은 사라졌어요. 사무실 짐을 바로 정리했고, 이틀 뒤 저녁진통이 와서 병원에 갔더니 진통은 맞지만 너무 미약하니 집에 갔다가 다시 오라고 했죠. 원하면 분만실에 들여보내줄 수 있지만, 지금 들어가면 정말 고생할거라 하더군요.


   애매한 진통을 견디던 3일 뒤 양수가 터졌어요. 진통은 미미한 데 양수가 터져 흘러 119를 타고 병원에 갔고, 무통주사를 맞고 16시간 동안 진통했어요. 양수가 터진 지 12시간이 지나 감염의 우려가 있다며 항생제를 맞고 기다렸지만, 아기는 나오지 않았어요. 가족분만실에서 친정부모님과 남편은 밤을 꼬박 세웠죠.


   결국 다음날 새벽 6시 제왕절개 응급 수술로 아기를 만났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 고생했는데 수술하니 정말 금방 아기가 나오더군요. 수술을 집도해준 의사 선생님이 밤새 고생하셨다며, 음악도 틀어주고 반수면 마취 상태이니 아기가 태어나면 성별을 확인시켜주고 아기와 볼 인사를 시켜주겠다고 했어요. 16시간 넘게 물 한 모금 못 마신 상태로 몸도 정신도 피폐했지만, 아기볼의 그 보드라운 감촉과 울음 소리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그렇게 어렵게 출산을 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꼬박 이틀은 침대에 누워만 있었어요. 16시간 동안 피를 많이 쏟아 빈혈수치가 떨어져 수혈도 2팩이나 맞았고요. 아기를 낳는다는 게 이렇게 위험할 수 있는 일이구나라는 걸 몸소 체험했죠. 저는 자연분만하신 분들 정말 존경해요.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딸아이의 출산을 함께 한 남편과는 이제 진정한 가족이 되었어요. 이틀이나 침대에 누워있다 맨 처음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제 침대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출혈이 정말 많았더라고요. 남편은 많이 줄어든 거라며 웃으며 패드를 갈아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딸 생일, 귀염둥이 공주가 태어난 날을 "나의 출산 기념일"이라 부릅니다. 얼마나 고생해서 낳았는데 모두들 아기만 보러 가고, 아기 선물만 주어 심통 부리던 저에게 "너는 언제 철드냐며" 등짝 스매싱을 날리던 친정엄마도 하늘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저를 응원해 주시겠죠?  뱃속에 있던 아기가 태어나 어느덧 이렇게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뭉클하기도 한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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