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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글자도 별로 없어 보이는데 뭔 말인지 모르겠어?

by 마잇 윤쌤

놀이치료사 윤쌤은 딸아이와 책을 자주 읽어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과 서평단으로 참여한 책들을 사이좋게 함께 읽는데요.


지난주, 제가 서평단으로 참여한 시집을 읽었어요. <당신은 나의 모든 전말이다> 였는데요.


오랜만에 시집을 읽어서 사실 잘 읽히지 않았어요. 시라는 것이 정말 함축적이잖아요. 세세하게 실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지 않고 은유적인 표현들이 계속되니까요.


맨 처음 읽으며, 상실과 이별에 대한 글인가? 하고 생각했어요. 직감적으로 작가가 사별한 것 같았거든요. 처음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나?! 생각하며 읽었는데요.


다시 읽다 보니 어딘가 모르게 에로틱한 표현이 등장하더라고요. 어머니에게 쓰는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하게 느껴졌어요.


그러다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고, 시집의 끝부분에 해설 부분이 등장했어요. 해설 부분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간의 물음표가 다 해결되었어요.


고영 시인님은 배영옥 시인님이 2018년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말기 암 투병을 하는 동안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두 분은 친구도 가족도 아니었다고 해요.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많은 부분이 이해되었고,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2024년 1월 엄마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지켜본 저로서는 보통의 마음으로는 말기 암 투병을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이 저물어가는 기운을 함께 견디어 내고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과정을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서로를 향한 마음으로 함께 했을 거라 짐작되었어요.


하지만 서로에게 법적인 책임을 질 수 없는 사이였기에 그 과정에 느꼈을 공허함과 쓸쓸함도 이해가 되었죠.


왜 이 시집의 제목을 <당신은 나의 전말이다>라고 표현했는지 알 것 같았어요.


얇은 시집을 몇 번이나 뒤적이며 심각하게 읽고 있었던 저에게 초등 3학년 딸아이가 말했어요.



"엄마, 글자도 별로 없어 보이는데

뭔 말인지 모르겠어?!"

- 놀이치료사 윤쌤 초등 3학년 딸아이



딸아이의 질문에 글썽했던 눈물이 쏙 들어갔어요. 빵 터져서 웃었거든요. 아이가 보기에 그렇구나. 딸아이는 이 시집의 의미를 제가 왜 웃는지를 궁금해했어요.



"친구도 가족도 아닌데

한 분이 돌아가시기 전

몇 달을 함께 지내며

시집을 만드셨데"

- 놀이치료사 윤쌤



이렇게 설명을 해주니 딸아이는 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어요. 왜?! 하는 질문과 함께요.



음...



이 많은 행간의 의미를 딸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답을 찾을 수 없었어요.


오래 고민한 끝에 저는...



"네가 더 커서 읽어보면

이해가 될 것 같아! "

- 놀이치료사 윤쌤



이렇게 미래로 대답을 미루어버렸답니다. 딸아이에게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했거든요.


때로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딸아이가 이해하려면 얼마나 커야 할까요? 엄마가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딸아이의 얼굴이 너무도 귀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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