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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장난감을 버리지 않는 이유

by 마잇 윤쌤

저는 마음을 다루는 치료사입니다. 어린아이들과는 놀이로, 언어적 표현이 자유로운 연령부터는 상담을 진행합니다.


치료실에 오는 친구들은 제 방에 있는 많은 장난감들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져집니다. 가끔 저와 함께 치료실에 가는 딸아이도 제 방을 좋아합니다.


딸아이 방에는 어릴 때 함께 했던 책들과 장난감, 인형들이 그대로 있어요. 딸아이 물건을 정리할 때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반드시 딸아이와 의논하고 처리할 것!"

- 놀이치료사 윤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에게 책들과 장난감, 인형에는 추억과 세계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제가 9살 때, 이사를 했어요. 이사하는 동안 저와 동생은 외할머니 집에 있었죠. 이사가 다 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어요.


엄마와 아빠가 힘들게 이사하고 정리 한 제 방을 보여주는데 모든 장난감이 사라졌더라고요. 피아노와 책상, 책꽂이만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 아빠가 신입사원에서 첫 대리로 승진을 하고 선물해 주셨던 키디 인형도, 아파트 마당에서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던 소꿉놀이도, 모두 없었어요.


어린 나이에도 방에 마음에 드냐며 기대에 찬 얼굴로 물어보던 엄마의 표정에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내 장난감이 다 어디로 갔을까 슬펐어요.


며칠 뒤 알게 된 사실은 반은 이미 버렸고, 쓸만한 것들은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에게 인심 쓰듯 나누어 주었더군요. 왜 엄마 마음대로 버리고 나누어 주었냐고 물었지만, 나이가 몇인데 장난감이 필요하냐며 혼만 났어요.


이사 간 방에 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던 아홉 살의 저를 잊을 수 없어요. 한참이고 물끄러미 어딘가에 장난감이 하나는 있지 않을까 찾았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장난감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놀이치료사가 되었나봅니다.


길었던 설 연휴에 딸아이가 모처럼 장난감들과 어릴 때 읽던 책들을 꺼내보더군요. 한참이나 책을 읽고, 장난감을 가지고 남편과 셋이 이야기하며 놀았어요.



"엄마, 이거 너무 귀엽다!"

- 딸



딸아이가 작은 책들과 장난감을 보며 신나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마음이 넉넉해지더라고요. 오래오래 보관하길 잘했다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날이었어요.


딸아이를 위해 장난감을 버리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제가 힐링 받는 기분이네요. 아이를 키우며 인생을 다시 산다는 게 이런 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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