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희극도, 비극도 아닌 것을.
2022년을 돌아본다. 당직 서며 맞이한 새해를 시작으로, 코로나 환자 급증으로 붕괴 직전인 의료 현장을 정부와 국회, 언론에 알리러 다녔다. 또한 코로나에 대한 시민들의 공포와 잘못된 상식을 바로 잡고자 서울시-청년의사가 기획한 유튜브 라이브 채널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 2종 소형 면허를 따고 바이크와 골프를 배웠다. 그러다 보니 가까스로 전문의 시험에 합격했으며, 이제는 전공의 신분이 아닌 전문의 신분으로 그리운 모병원으로 돌아와 임상강사 수련을 시작했다. 따뜻하고 능력 있는 교수님들께 내시경 술기뿐 아니라 참된 인생 교육을 받은 충만한 시간이었다.
내시경이 익숙해질 때쯤, 의료 환경과 삶에서 느낀 진심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해야겠다는 마음에, 존경하는 교수님의 추천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여기서 인생 멘토이자 어른으로 섬길 수 있는 멋진 분들을 많이 만났으며, 새로운 경험과 배움으로 나의 부족함과 성장 욕구를 채워가는 설레는 날들이었다.
서울시의사회 정책 이사로서, 4차 산업혁명 흐름에도 의료의 본질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원격의료와 비대면 진료에 대한 기고, 연구회 활동에 최선을 다했고, 젊은 의사, 변호사 동료들과 함께 선제적으로 환자 안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반면 전년도부터 친구들과 함께 해오던 스타트업 일은 더 이상 병행하지 못하고, 휴지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2020년 의사 파업의 여파로 휘말린 소송으로 마음이 많이 다쳤지만, 최선을 다해 버텨내 결국 승소했다. 소모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수많은 인적 모임과 약속에 참여했고, 바쁘게 지내는 가운데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혹은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심적 압박에 계속 시달렸다.
그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나는 다양한 취미에 도전했다. 재판 준비를 마치고, 여름휴가 기간에는 혼자 승마 트래킹 겸 몽골로 떠났다. 마지막 필요한 서류를 제출한 게 공항 게이트에서였다. 승마는 핑계일 뿐, 정작 필요한 것은 나를 옭아매던 것들로부터의 자유와 결핍을 마주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몽골 새벽녘의 차갑고 고요한 시간은 나에게 많은 위로를 주었다.
사실 한쪽 눈을 잃게 된 11월의 낙마 사고는, 내게 첫 번째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8월 몽골에서도 또 한 번의 낙마 사고가 있었다. 위험 징후를 자꾸 무시하다 보면, 병이 진행해 결국 큰일이 터지는 것을 놓치게 된다. 나를 둘러싼 안팎의 문제들을 끌어안고 채찍질하며, 나는 낭떠러지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쩌면, 매몰되어 인생을 통째로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위험 징후였는지도 모르겠다.
한쪽 눈을 잃게 된 사고는, 이 모든 것을 잠시 멈추게 했다. 많은 이들이 다치고 상한 나를 둘러싸고 보호하며, 따뜻함과 사랑을 차곡차곡 채워 주었다. 슬픔과 공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는 충만한 시간 틈틈이 조금씩 회복해 갔다. 어쩌면 비극적인 사고는, 더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나를 구원한 신의 은총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예전에는 인생이 실상은 고통스러운 비극이라는 측면으로 이해했었다. 하지만, 한 템포 멈추고 멀리서 바라보니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가까이 비극처럼 느껴지기만 하던 삶도,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희극 완성작의 일부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길고 긴 여정을 지나, 한쪽 눈으로 2023년을 맞았다. 이제, 인생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졌다. 삶은 어차피, 힘듦과 슬픔, 기쁨과 행복이 공존하는 한 편의 소설일 뿐, 중요한 것은 여전히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삶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여정에 함께 하며 빈 곳을 채워 준 많은 분께 고마움을 표하면서, 이제는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 베풀며 비극이자 희극인 삶을 용기 있게 헤쳐 나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