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나오는 아기새의 불안
언제나,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할 때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시기가 그랬다. 아직 나는 경험한 적이 없지만, 내 또래의 친구들이 결혼 전날 잠을 설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한쪽 눈을 잃은 후의 내 경우에는, 병원에서 퇴원 후 본가로 들어갈 때와 가족들이 함께 사는 본가를 떠나 나의 독립된 오피스텔로 옮기는 일이 그랬다.
치료와 회복 과정에서 눈물을 참기 어려웠던 때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 들이었다. 객관적으로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을 겪었다. 많은 분의 도움으로, 나의 주관적인 힘듦과 아픔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기 부리로 알을 깨어 나오는 아기 새처럼, 나 또한 오롯이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다치기 전에도 겪었다. 특히 삶의 큰 변화를 동반하는 순간이 그랬다. 진로를 변경한다거나, 사는 곳을 바꾼다거나 하는 등. 스스로 더 나은 선택임을 확신할 수 없을 때면,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 감정은 더 크게 요동쳤다. 불확실성은, 삶의 모든 선택과 도약이 가지는 공통점이다. 공통으로 동반되는 불안과 두려움의 뿌리를 읽지 못하던 시절에, 나는 그 감정을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풀었다.
감정의 뿌리를 마주하지 않은 채, 어딘가에 털어 내버리는 방법은 사실 흔하다. 무한정 먹거나 마시거나 사재 끼는 등의 건강하지 않아 보이는 방법과 뛰거나 말하거나 쓰는 등의 건강해 보이는 방법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감정을 털어내는 ‘방법’과 ‘결과’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감춰지곤 한다. 그건 바로 털어내는 ‘과정’에서 용기를 내, 감정의 뿌리와 정면으로 마주했는지 여부이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파고들다 보면 보이지만, 대다수는 그 과정이 무섭거나, 귀찮거나, 방법을 몰라 외면한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모든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도전에 실패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두려움을 느낀다. 현재에 안주하고 싶은 나태함과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힘겹다. 에라 모르겠다 포기해 버리자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버티는 것이 피로하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것은, 남과 비교해서 스스로를 나무라고 구석에 나팽개치는 내 자신이다.
2023년이다. 새해의 설렘 또한, 별반 다를 것 없는 처절한 일상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도전’은 누구에게나 벅찰 뿐 아니라, 동시에 두려움을 안기기 마련이다. 알을 깨고 나오는 아기 새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감정을 따뜻하게 감싸기로 한다. 오늘도 각자의 치열한 자리에서, 다음 단계 도약을 꿈꾸는 모든 이들과 나 자신에게, 마음 깊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