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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윙크의사 Dec 29. 2022

실명이란 비극 받아들이기.

의사로 일하던 병원에, 환자로 입원하여.

사고 앞뒤로 수 시간의 기억이 몽땅 사라졌다. 억지로 시간을 거슬러 더듬고 헤집었다. 나의 마지막 기억은, 찬란한 단풍이 가득한 가을 산에서, 베이지 빛깔을 띤 말이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던 장면이었다. 어찌 보면 신이 내게 준 축복이다. 고통스럽고 끔찍한 기억이 아닌, 아름다운 기억만이 남아 있어서. 비록 그 아름다움 속에서, 현실의 비극을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 이긴 했지만.


나는 의사였지만, 본인의 의학적 상태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육체적 비극 앞에서 나는 더는 의사가 아닌, 철저히 수동적인 환자였다. 병원 안에서 내 의사 아이디를 이용해 내 환자 기록을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절망적일 것이 뻔할 의학적 상태를 굳이 알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냥 수동적인 상태로 남아 있는 편이 편했다.


왼쪽 눈을 실명했다고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왼쪽 눈이 완전히 파열되어, 시각 기능을 유지하는 데 중추적인 망막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내가 듣고 충격을 받을까 봐 걱정되어서인지, 교수님들은 먼발치에서 속삭이며 의견을 나누셨다. 그렇지만 당시의 분위기나, 참담한 표정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에게 큰 비극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은,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서다. “연주야, 너 왼쪽 눈, 실명했대.” 그 말을 꺼내기까지, 엄마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아마 어떻게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백번도 넘게 고민했을 거다. 나는 담담하게 “아, 그래? 응.”하고 대답했다. 그 외에 어떻게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바쁘게 떠올랐다.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응급 수술 이후 처음으로 안과 외래에 내려가 교수님을 만날 때,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병원 동료이자 제자인 나의 비극에 마음을 많이 쓰시는 듯했다. 내가 조심스레 꺼낸 질문은 “혹시, 안구 이식이 되나요?”였다. 고요한 외래 방에 순간의 적막과 탄식이 울려 퍼졌다. 이후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망막이 사라져서 어떠한 방법으로도 시력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교수님께서는 덧붙여 말씀하셨다. “안구 적출을 최대한 피해 봅시다. 봉합한 안구의 모양과 부피가 유지되어야 해요. 감염이 퍼지면 다른 쪽 눈도 잃게 되니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구 이식이 가능하냐는 질문은, 내가 입원 생활 통틀어 물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질문이었다. 그 외의 질문은 불필요하게 느껴져서 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의 바쁘고 치열한 삶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았다. 사소한 불편이나 궁금증은 그 바쁜 일상에 짐을 더하는 것 같아서,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의사 면허를 따고 5년간 일하던 병원에, 내가 입원해 있다. 이곳에서, 수도 없이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만났다. 전공의 때는 매일, 이 병원 안에서 먹고, 씻고, 잠들던 곳이었다. 그때와 똑같은 공간에서 지내고 있는데, 나는 완벽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의사가 아닌 환자가 되어, 나의 비극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환자가 되는 경험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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