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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Nov 13. 2019

딸아, 너는 콘텐츠가 정말 많구나!

놀면 놀수록 아이디어가 샘솟는 신비한 아이의 세계

 우리는 아이에게 "올 한 해는 네게 어떤 의미였니?"라고 묻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는 어땠니?" 하고 물어볼 뿐이다. 아이들에게 하루는 세상의 전부다. 아이들은 매 순간순간 집중하고 몰입한다. 1분 후의 즐거움을 위해 지금의 1분을 억지로 참지 않는다. 지금 당장 기쁘면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우면 양껏 즐거워하고 심심하면 충분히 심심해하며 슬프면 하염없이 슬퍼한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미루기'란 통용되지 않는 법칙이다.


 34개월 된 딸아이는 눈 뜬 순간부터 분주하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서 침대 맡에 있던 책을 내게 들이민다. "엄마, 이거 읽어줘" 책 한 권을 다 읽은 후에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이제 우리 무지개 포도 그려보자!" 아이는 말하는 동시에 칠판 앞에 앉아 마카 팬을 꺼내놓기 시작한다.


"우리, 이제 색칠놀이하자!"

"이제, 동물 쌓기 놀이하자!"

"이제, 인형들이랑 숨바꼭질 하자!"

"이제, 찰흙 놀이하자!"

"엄마! 이제는....."


 아이의 놀이 아이디어는 끝이 없었다. 어린이집 가기 전 1시간 동안, 아이는 무려 여덟 가지가 넘는 놀이를 하고 등원을 했다. 여유가 없는 것은 등원 준비를 돕는 엄마였지,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에게 1분이면 한 가지 놀이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엄마의 '시간이 없어'를 아이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휴지심을 이어붙어 긴 뱀을 만들고, 물감 옷을 입고, 손을 붓삼아 그림을 그린다 © 엄마 엘리
아빠가 끌어주는 이불썰매에 까르르 웃고, 스스로 한 요리를 진지하게 맛보며, 솜 위에 누워 구름을 만지는 상상을 하는 아이 © 엄마 엘리

 


 남편이 퇴근을 하면 엄마인 나는 찬밥이 되기 일쑤다. 아이는 아빠 오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밥숟갈 내려놓기 무섭게 아빠에게 안겨 이거 하자, 저거 하자, 놀자고 성화를 부린다. 아빠는 기꺼이 놀지만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놀이 블랙홀에 어느새 두 손 두 발을 들어 올린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놀이 아이디어를 내는 딸에게 남편은 감탄했다.



딸아, 너는 콘텐츠가 정말 많구나!



요리사 모자를 쓰고 저녁을 짓고, 엄마가 되어 어린 하나를 재우며 놀기도 한다 © 엄마 엘리
산책길에 새빨간 세상을 구경하고, 모래 침대에 드러 눕기도 하고, 얼굴을 도화지 삼아 그리며 즐거워한다 © 엄마 엘리



 아이는 어째서 이렇게 '잘' 노는 것일까? 나는 놀이에 몰입한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또렷하게 빛나는 눈망울, 앙 다문 채 쭉 내민 입술, 생각에 잠긴 진지한 표정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숨을 죽이게 된다. 아이의 숭고한 놀이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다.  


 놀이는 그 자체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다. 놀이 개념 그 자체는 진지함보다 더 높은 질서 속에 있다. 왜냐하면 진지함은 놀이를 배제하려고 하는 반면, 놀이는 진지함을 잘 포섭하기 때문이다.
-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중에서


 놀이에는 아이의 생각이 잘 담겨있다. 한 번은 책을 읽어주는데 아이가 책에 나와있는 사자며 토끼며 풀이며 구름이며 모든 그림들을 손에 쥐어 입으로 가져가 먹는 시늉을 하는 거다. 페이지마다 같은 행동이 반복되자 내가 물었다.


 "얘네들을 왜 다 먹는 거야?"

 "좋아서"

 "응?"

 "다~ 좋아해서, 그래서 먹는 거야"


 아이는 좋아하는 마음을 먹는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자기 마음속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라면, 어른이라면, 주머니에 쏙 넣거나 가슴에 폭 안는 시늉을 했을 텐데. 아이다운 신선한 발상에 감탄했다.


 실은, 3살 아이의 말과 행동, 생각은 언제나 경이롭다. 아이랑 놀면서 배우는 쪽은 외려 엄마인 나다. 아이의 드넓은 세계를 조금씩 조금씩 훔쳐보면서 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생각들이 나에게도 스며들기를, 진심으로 바란 적이 있다.


 

놀이터에서 찾은 보물들, 아빠 선물로 챙겨왔다 © 엄마 엘리


 아이에게는 길을 걸으면서도 보석을 찾을 수 있는 혜안이 있다. 아빠가 쓰는 '이쑤시개'가 이렇게 많이 있다고 기뻐하며 떨어진 솔잎 낙엽을 양 손 가득히 챙기고, 놀이터 그네 옆에 떨어진 작은 사과와 솔방울과 나뭇가지를 주어 '선물'을 찾았다고 조심스럽게 꺼내 보인다. 아이에게는 세모 돌멩이 하나도 소중하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플라타너스 잎도 특별하다. 그래서 아이는 한 발짝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빛나는 보석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의 눈에는 온 세상이 별천지일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어린아이처럼 신성한 긍정이 필요한 것이라고. 아이는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라고. 그 완전하고 완벽한 존재를 흠모하며 오늘도 난, 엄마로서 한 뼘 더 성장할 기회를 갖는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하나의 놀이이며,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움직임이며, 하나의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나의 형제여, 신성한 긍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잃어버리는 자는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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