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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Dec 27. 2019

엄마 3년 차, 젠더 성교육이 필요할 때

손경이 소장의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성교육 하기" 특강을 들은 후

 어젯밤, 아이 이마가 평소보다 뜨거웠다. 열을 재보니 37.8도. 체온계에 노란불빛이 비치자 내일 잡혀있던 일정이 생각났다. 어떡하지? 내일은 성교육 특강이 있는 날인데...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곧바로 해열제를 먹였다. 피곤했던 아이는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고 새벽 내내 깨지 않고 푹 자주 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다행히 열도 뚝 떨어진 상태였고.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등원 후 나는 구리시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손경이 소장의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성교육하기> 특강을 들으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관계교육연구소 대표 성교육 전문가 손경이 소장은 tvN <어쩌다 어른>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의 강의를 몇 번 들었는데, 그때 당시 미투 열풍이 불었던 시기라 더욱 관심이 갔던 기억이 난다.


 그는 강의에 앞서 참석자들의 양육환경을 확인했다. 참석자 대부분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는데, 남아를 키우는지, 여아를 키우는지, 5세 미만인지, 5세 이상인지,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지, 없는지 등등을 세세하게 물었다. 청중이 누구냐에 따라 현장에서의 강의 내용도 달라진다고 했다.


 오늘 모인 청중은 대부분 6세 미만의 유아를 키우고 있었고 성비는 남아를 키우는 양육자가 월등히 많았다. 그는 이러한 현상은 최근에 벌어진 성남 어린이집 사건과 무관하지 않으며 최근 들어 부쩍 남아를 키우는 가정에서 성교육의 필요성과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서울시가 지정한 성평등 언어사전과 강사가 젠더 드라마로 소개한 '동백꽃 필 무렵' © 엄마 엘리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오늘 성교육은 "젠더 성교육"에 초점이 맞춰졌다. 여성과 남성의 생식기에 대한 차이가 아닌, 문화적, 사회적 맥락 안에서의 성에 중점을 둔 것이다.


 본격적인 젠더 성교육을 하기에 앞서 그는 강조했다. 우리가 살면서 익숙해진, 티끌도 의심하지 않고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 것들을 '낯설게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에는 성차별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언어가 무수히 많다고. 그래서 의식적으로 한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으로, 미혼이 아니라 비혼으로, 자궁(자식을 낳는 공간)이 아니라 포궁(세포로 만든 공간)으로,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불법 촬영으로, 유모차가 아니라 유아차로, 부모가 아니라 양육자로.




남자가 나무라면 여자도 나무이다, 아이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5:5 존중 스킨십 법칙 © 엄마 엘리



주체성 그리고 젠더 감수성



 남자가 나무라면,
여자는 무엇일까요?



강사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대지요." 다른 청중들의 대답도 비슷했다. "뿌리요, 햇빛이요, 열매요.."


 그러자 강사가 답한다.


 남자가 나무라면,
여자는 (또 다른) 나무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사의 말에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유치원생 아이들은 정답을 바로 맞혀요. 남자 나무가 있으면 여자 나무도 있잖아요. 과학시간에 배웠어요,라고 말해요. 틀리는 것은 어른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여성이 하나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비주체적인 존재, 나무의 부속물 혹은 다른 대체제로 인식할까요?
여성이 주체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교육이 그러했고, 우리 사회가 그러했고, 우리 문화가 그러했기 때문이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남자가 나무라면, 여자는 나무입니다. 똑같은 나무가 아닌, 또 다른 나무예요. 아이들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이러한 편견들을 깨고 새로운 시각과 사고방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교육에도 균형이 중요하다고 한다. 성교육하면 떠오르는 것? 하고 물었을 때, 부정적인 것이 많다면 긍정적인 측면을 알려주고, 아름다운 면이 많다면 어두운 면을 알려주어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자답게, 남자답게', 라는 이분법적인 성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젠더 감수성을 기르는 연습도 필수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아이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갖고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성장하며 자신만의 성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당장 아이와의 스킨십에서부터 아이의 주체성을 존중해주는 연습을 해가자고 권유했다. 아이와 뽀뽀하기 전에 "엄마가 뽀뽀해도 돼?"라고 물은 후, 아이가 어떤 대답을 하던 아이의 결정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아이가 좋다면 뽀뽀하고, 나중에 하자면 나중에 하고, 싫다고 하면 하지 않는 거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아이의 성 주체성을 기르는 첫걸음이었다.



여자는 음순, 남자는 음경, 정확한 명칭을 부르고 가르치자 © 엄마 엘리



양육자,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어느 날, 함께 목욕하는 시간에 3살 배기 아들이 엄마에게 물었다고 했다. "엄마는 고추가 왜 없어?" 그러자 아이 엄마가 대답했다. "음... 엄마 고추는 고추밭에 있어." 그러면서 엄마는 고민을 토로했다. "그때 제가 대답을 잘 못한 것 같긴 한데, 순간 당황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얘졌었어요."라고.


 손경이 강사는 목소리를 높여 강조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생식기의 정확한 명칭을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소중한 곳, 보물 등 애칭으로 불러서는 절대 안 된다고. '고추가 있고, 고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음경이 있고 음순이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떳떳하게 알려줘야 한다고. 서로 다른 생식기가 있는 것이지, 누군 있고, 누군 없는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가르치면 아이들은 편견 없이 잘 흡수한다고 했다. 문제는 어른들이란다. 아이가 "엄마, 나 시소 타다가 음순이 아팠어"라고 얘기하면, 엄마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런 얘기는 이런데서 하는거 아니야. 쉿 쉿!" 하기 바쁘단다. 그러면 아이는 음순 얘기는 꺼내면 안 되는 거구나, 생각하고는 비슷한 일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숨기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놀이터에서 큰 소리로 음순, 음경을 말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는 답이 돌아온다. 당황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나부터도 아직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3살 딸아이를 둔 양육자로서, 오늘의 성교육 특강은 나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었다.


 아이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하기에 앞서, 내가 제대로된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교육은 아이보다는 나에게 더 필요한 것임을 느꼈다. 양육자인 나부터 낯설고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성을 열린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야겠다고, 의식적으로라도 노력해보자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하는가보다. 엄마 공부도 끝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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