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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Jan 07. 2020

빵빵 터지는구마

고구마 하나로 이렇게 웃기기 있기 없기?!


 엄마, 고구마 책 또 읽어줘요!



 아이는 어떻게든 책 한 권이라도 더 읽자고 성화다. 잠자기가 싫어서다. 아이의 깜찍한 꿍꿍이를 알면서도 엄마는 아이의 '책 읽고 싶다'는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이가 모를 리 없다. 책을 읽자고 하면 불 끄는 시간을 좀 더 늦출 수 있다는 것을 아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목적이 분명한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엄마, 책 읽어주세요!

 이 책 다 읽고, 그다음엔 이 책, 그다음엔 이 책을 읽을래요!!!  

 


도서관에서 빌려온 사이다 작가의 첫 번째 책 <가래떡>과 두 번째 책 <고구마구마> © 엄마 엘리



 아이가 말한 고구마 책은 사이다 작가의 그림책 <고구마구마>다. 아동도서실의 신간 코너를 기웃거리다 낯익은 그림체에 이끌려 빌려온 것인데, 알고 보니 전에 읽었던 <가래떡>을 쓰고 그린 사이다 작가의 두 번째 책이었다.



고구마는 둥글구마!
고구마는 길~쭉 하구마!



 표지를 넘기자 다짜고짜 둥근 고구마와 길쭉한 고구마가 나왔다. 글의 운율을 살려 읽었는데, 남편이 듣자마자 그런다. "아따, 그 책은 전라도구마이" 난 남편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 책장을 넘기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조그맣구마"

 "굽었구마"

 "털났구마"

 "험상궂구마"

 "참 다르게 생겼구마"


 각양각색의 고구마들 옆에 쓰인 글들을 맛깔나게 읽으려고 노력했다. 굽었구마, 라고 읽어줄 땐 내 등도 굽으려서, 조그맣구마, 라고 읽어줄 땐 목소리도 아주 작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자 아이가 깔깔깔 배를 잡고 웃는 게 아닌가. 그 다음장, 그그 다음장에서도, 아이는 연신 재밌어, 재밌어. 하면서 킬킬킬, 큭큭큭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웃었다.


 

책에는 없지만 "모자 벗었구마", "뾰족하구마"를 넣어 읽어주니 아이의 호응도 더욱 커졌다.  © 출판사 반달


 


 또, 또!
한번 더! 한번 더!


 

 앙코르를 외치는 아이 덕분에 그날 밤 고구마구마 책만 내리 세 번은 읽은 것 같다. 읽을 때마다 좀 더 우스꽝스러운 말투, 과장된 표정으로 읽어주었다. 아이가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한 것은 물론이다.


 고구마 한 줄기에서 여러 모양의 고구마들이 줄줄이 나오는 모습을 포착해 이렇게 재미있는 그림책을 만들어내다니. 두 딸의 엄마인 사이다 작가님의 재치와 위트에 나도 감탄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의 첫 그림책 <가래떡>도 인상 깊었다. 가래떡이 뽑아져 나오는 일상적인 상황에 기발한 상상과 창의력이 버무려졌는데, 마치 주인이 없는 집 안에서 장난감들이 활개를 친 '토이스토리'처럼, 텅 빈 방앗간에서 가래떡들이 벌인 신명 나는 대소동을 개성 있고 통통 튀는 그림체로 그려내었다.


 아이가 밤마다 읽어달라고 할 만큼 좋아하자, 뒤늦게 <고구마구마> 그림책 소개를 찾아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웃긴 고구마 이야기로 온 세상이 들썩들썩!

꼼꼼한 관찰과 상상력과 재치가 빚은 요절복통 그림책!

웃으며 넘기다 보면 볼품없어 보이는 고구마의 참 매력이 쑤욱!


 역시. 작가와 출판사의 의도도 "재미"였구나. 출판사 소개말처럼 정말 세상에서 가장 웃긴 고구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35개월 아이도 책을 읽는 내내 깔깔대고 웃었으니, 재미 보장, 흥행 보장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고구마를 이렇게 자세히 관찰한 적이 있었던가.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고구마의 생김새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있었던가. 고구마에 대한 작가의 살뜰한 시선과 애정이 반갑다. 박장대소, 요절 복통하는 고구마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햇살같이 찬란한 아이의 웃음 세례를 마음껏 받고 싶다면 아이에게 꼭 한번 읽어주구마. 후회하지 않을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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