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 엘리 Apr 10. 2019

밤마다 아빠랑 그림자 놀이

불 끄고 아이를 빨리 재우는 노하우랄까요



깜깜해! 안 보여! 불 켜죠 으앙~



두 돌이 지나자 아이는 불 끄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습니다. 잘 놀다가도 '이제 코 자야지'하고 불을 끄면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한 동안 아이는 불을 켜고 잠들었는데, 아무래도 불을 켜니 잠드는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매일 밤 아이랑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엄마, 아빠도 아이를 재우는 시간이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서 겨우 불을 껐는데 그만 핸드폰을 잘못 터치하는 바람에 플래시가 탁 켜졌습니다. '우와' 방 안이 환해지자 아이는 탄성을 질렀어요. 아빠가 갑자기 불빛 앞에서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면서 벽에 비친 아이 머리를 잡는 흉내를 내었습니다. 아이는 까르르 웃었고 '또또'를 외쳤습니다.




꽃게를 만들고 강아지를 만들어서 역할놀이를 한 것이 그림자 놀이의 시작이었습니다



채유야 안녕? 난 꽃게야!



그렇게 매일 밤 우리만의 그림자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양손을 겹쳐 옆으로 기어가는 꽃게를 만들고, 그림자 놀이의 고전인 강아지를 만들어 멍멍 짖었습니다.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하고 악수를 했습니다. 손가락을 쫙 펴고 움직이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핑거 패밀리 노래도 불렀습니다. 아이 침대에 있는 동물 인형들도 줄줄이 무대 위에 세워서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한 후 '잘 자' 하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러고 나서 불을 끄면 아이는 다시 불을 켜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누워서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평소보다 더 이른 시간에 말입니다.


그 뒤로 엄마, 아빠가 '이제 코 잘 시간이다' 하면 아이는 '그림자 놀이, 또또'라고 대답합니다. 그렇게 매일 밤 그림자 놀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요. 벌써 세 달이 넘었네요.




아빠가 준비한 동물 그림자 친구들, 아주 디테일합니다



며칠 전, 퇴근 한 남편의 안주머니에서 종이 뭉텅이가 한 움큼 나왔습니다. 동물 그림자들을 출력해 가위로 오린 것들이었습니다. 신용카드 사이즈만큼 작은데 악어 발톱이며 코끼리 상아까지 아주 디테일했습니다. 남편은 섬세하게 오리고 칼로도 다듬은 후에 빨대에 붙여서 준비했습니다.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보지 못하도록 숨겨놓고 밤잠 자는 시간을 기다리더군요. 드디어 밤이 깊었습니다.



이제 코 자자!




아빠가 만든 동물친구들로 그림자 놀이를 하는 채유, 저 야무진 두 손을 보라 (엄마 미소)




남편은 미리 불을 끄고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그림자 놀이를 세팅한 후, 짜잔, 하고 공들여 준비한 동물친구들을 꺼내놓습니다. '안녕 채유야, 나는 코가 긴 코끼리야' 코끼리를 먼저 등장시키자 아이는 역시나 폴짝폴짝 뒤면서 '내가 내가' 합니다. 아이가 코끼리를 낚아채면 아빠는 고릴라를, 아이가 고릴라를 가져가면 말을, 말을 가져가면 악어를, 물개를, 기린을, 새를... 새로운 동물 친구들을 하나씩 하나씩 무대 위로 등장시켰습니다.


아이는 이날 꽃게나 강아지가 아니라 다른 동물들을 잔뜩 볼 수 있게 되어서 평소보다 재밌게 놀았습니다. 악어를 들고는 '이거언~ 채유가~ 좋아하는~ 초록색 악어야!'하고 설명도 해줍니다.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신나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준비한 아빠는 마냥 뿌듯해했습니다.




매일 밤 아빠랑 그림자 놀이, 아이도 아빠도 즐겁습니다



아빠랑 그림자 놀이 재밌어




아이의 말에 아빠는 '내일 또 하자'고 대답합니다. 어쩌다 아빠가 늦는 날에는 아빠랑 그림자 놀이를 하지 못한다고 아쉬워합니다. 엄마가 해주지만 재미가 덜한가 봅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그림자 놀이를 시작한 후부터 아이는 잠투정이 많이 줄었습니다. 어두운 곳을 무서워했었는데 이제는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밤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들이 쌓여서 그런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오늘 밤에는 또 어떤 그림자 놀이를 하게 될까요. 아이 만큼 엄마, 아빠도 매일 밤 그림자 놀이를 기다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에게 설탕을 내어주십시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