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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May 13. 2019

아이랑 같이 다니는 게 눈치 볼 일인가

아이있는 가족에게 때론, 무관심이 필요하다

주말에 아이랑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짧은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아이가 생긴 뒤론 여행 장소를 선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아이가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곳인가’이다.


아무리 트렌드하고 세련된 곳이라도 사람이 너무 붐비거나 (그래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테이블 간격이 좁거나 (그래서 아기의자를 놓을 수 없는), 너무 엄숙함을 요한다거나 (그래서 아이들의 울음, 웃음, 노래, 질문 등을 억압하는), 아이들이 지루하고 심심해하거나 (그래서 아이들이 쉽게 짜증을 내는) 할 것 같다면 절대 가지 않는다.



우리가 머문 룸 테라스에서 본 정원과 산책로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은 정말 마음이 편했다. 아이 동반한 가족에게 특화되었다는 호텔 롤링힐스에 머물렀는데 머무는 동안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실로 다양했다. 게다가 투숙객이라면 대부분, 룸서비스와 조식 뷔페를 제외하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 방마다 침대 가드, 미니 건조대 비치 (가습기, 욕실 발판은 요청 시 제공)

- 튜브 반입이 가능하고 구명조끼와 키판, 수영모, 생수까지 무료 제공하는 실내수영장

- 잘 가꿔진 산책로와 그 한가운데 있는 야외 놀이터

- 만 5세 이하 영유아를 위한 키즈존

- 아이랑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스쿼시 존

- 연못의 잉어들과 무료로 제공되는 잉어먹이

(대부분 영유아는 동물에 관심이 많고 직접 먹이를 주는 체험도 좋아한다)

- 이 곳의 시그니처, 아이들 입맛에 딱 맞는 치킨 룸서비스 (배달한 치킨을 로비에 내려가 받아가는 번거로움이 없다)

- 아이들이 선호하는 캐릭터 식판, 포크, 스푼 제공하고 아이들 위주의 메뉴가 많은 조식 뷔페



수영을 너무 좋아하는 딸. 어딜가든 수영장은 늘 일순위다.
만 5세 이하용 아담한 키즈존, 산책로랑 연결되는 야외 놀이터, 아이랑 함께 이용가능한 스쿼시존


롤링힐스는 이미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들에게는 유명한 호텔이다. 그런데 이 호텔을 추천한 주변 지인이나 블로그 후기들을 보면 하나같이 “아이랑 다니는데 눈치 볼 필요가 없어 좋았다” 고 했다.


아이 있는 가족이 왜, 눈치를 봐야 하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나도 모르게 아이랑 지하철을 타면, 카페에, 식당에 가면 아이가 내는 소리에, 아이가 하는 행동에 (집에서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을 깨달았다.


아이랑 다닐 때 나는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일까? 그 ‘눈치’때문에 딸에게 지나치게, 필요 이상으로 조용하고 얌전하게 가만히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달라진 엄마의 그런 행동에 아이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아이에게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를 박탈하고 억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아이가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키즈카페나 아이 친화적인 장소로 가는 것이 내 마음도 편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를 위해 간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나 또한 주변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아이를 필요 이상으로 다그치지 않아도 되니 그런 곳만을 찾아다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못에 있는 잉어들을 보는 채유. 잉어 밥도 줄 수 있다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랑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보다는 확실히, 해외에서 아이랑 함께 여행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고 느낀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마치 해외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호텔 침대에 누워 곰곰 생각했다. 아이가 크게 울건, 소리를 지르건, 바닥에 누워서 발을 동동 구르며 떼를 쓰던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 어떤 시선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끔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빛은 따뜻했고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이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 투숙객은 90% 이상이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서로에게 무관심했던 것 같다. 우리 아이도 저럴 때가 있으니까. 잠깐 저러다 말 거니까. 아이를 진정시키고 싶은 건 그 누구보다 부모라는 것을 아니까.


특별히 남을 배려해서 시선을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아이의 특성을 잘 알고 있고 그러한 반응과 행동에 익숙하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무관심'이 참 편안하게 느껴졌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는 그 말을 실감했다.



아이들 입맛 사로잡는 치킨 룸서비스와 캐릭터 식기가 구비된 뷔페



이 곳이 '완벽한 곳'이었나, 하면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다만, 아이도, 어른도 따가운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다른 단점들을 상쇄시켜준 것뿐이다.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가 아니라, 그저 마음 편하게 머물 수 있는 환경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울음과 징징거림에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 개가 짖나 보다, 하는 담담함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굳이 아이를 위한 어떤 곳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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