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소다와 식초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베이킹소다와 식초는 화장실 청소할 때만 쓰는 것인 줄 알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청소할 생각으로 베이킹소다 활용법에 대해 알아보고자 검색창에 '베이킹소다'를 입력하는데, 그 옆에 '놀이'가 연관 검색어로 뜨는게 아닌가.
베이킹소다 놀이??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베이킹소다로 놀이가 가능한가? 나는 의심했지만 이미 이와 관련된 수많은 콘텐츠들이 있었다. 베이킹소다도 아이와 함께 놀 수 있는 꽤 괜찮은 놀이재료였던 것이다.
청소는 하루 더 미루기로 했다. (늘 그렇듯이)
대신, 오늘은 뭐하고 놀까? 고민하던 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말했다.
오늘은 부글부글 화산 폭발 놀이, 어때?
3살배기 아이는 화산, 폭발 이란 단어는 몰라도, '부글부글'과 '놀이' 를 이해하고는 뭔가 재밌는 걸 하나보다, 생각한 듯 했다. 아이는 내 제안을 듣자마자 "좋아!!"하고 외치며 방방 뛰었다.
주방에서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꺼내왔다. 아이에게 제품 표지에 있는 글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읽어줬다.
"이건, 베.이.킹.소.다. 그리고 이건, 사.과.식.초 야"
아이는 내 손과 입을 번갈아서 응시한다. 그리고는 아는 단어인 '사과'가 나오자, "채유 사과 좋아해. 아삭아삭 사과 정말 좋아" 라고 표현한다.
"채유야, 베이킹소다와 식초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라는 내 물음에 아이는 호기심 가득 찬 눈망울을 반짝거렸다. "한번 해볼까?" 나는 다시 물었고, 아이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다.
컵에 베이킹소다 한 스푼을 넣고, 다른 컵에 식초를 약간 덜어 놀이매트로 가져갔다. 아이는 이미 놀이매트 안에 들어가 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컵이 놀이매트로 들어가자 아이는 물개 박수를 친다.
"자, 이제 해보는거야. 채유가 여기에 식초를 부어봐. 조금씩 부어볼까?"
아이는 고사리손으로 조심스럽게 컵을 가져가더니 베이킹소다가 있는 컵 안으로 한번에 훅, 하고 박력있게 쏟아부었다. 베이킹소다에 식초가 닿자마자 보글보글, 부글부글, 거품이 솟구쳤다.
우와~ 거품, 거품!
또! 또! 또 할래!
아이는 거품이 보글보글 솟아오르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많은 양이 아니라 거품은 금새 잦아들었으므로 아이는 또하고 싶다고 재촉했다. 그래, 한번 더 하자, 하며 다른 그릇에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다시 준비해줬다.
아이는 다시 한번 식초를 붓더니 보글보글 올라오는 거품을 관찰한다. 이번에는 식초가 담긴 컵에 베이킹소다 가루를 손으로 뿌려넣어본다. 그리고 또 관찰한다. 거품이 잦아든 베이킹소다 반죽을 이 컵에서 저 컵으로 옮겨보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매트에 떨어진 베이킹소다 반죽을 손으로, 발로, 만져보면서 촉감을 느낀다.
아이는 스스로 이렇게 저렇게 시도하면서 한참을 놀이에 집중했다.
아이가 거품 만들기에 흥미를 잃었을 때쯤, 물감을 쓱- 하고 꺼내놨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감을 집어 베이킹소다 반죽이 담긴 그릇에 뿌직, 뿌직 하고 짜기 시작한다.
"이렇게 물감을 넣고 섞어주면 예쁜 색깔 모래가 된대." 라고 얘기했건만, 막상 섞으니 잘 섞이지 않았고 모래놀이같은 질감이 되지도 않았다. 아이는 물감 짜는 것에 집중하다 이내 그만 손을 씻겠다고 손을 뻗는다.
2살일 땐 물감이나 밀가루 등 한 두가지 재료만 있으면 손으로 만지고 온 몸에 칠하며 오감놀이가 가능했는데, 한 살 더 먹으니 놀이에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해졌다. 스토리를 포함한 놀이기획을 매번 엄마가 모두 준비하기에는 한계를 느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퍼포먼스 미술놀이를 등록해 지난 봄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알록달록 소금나라로 가자', '동글동글 구슬이 지나가요', '명화퍼포먼스 달팽이', '길쭉길쭉 재미있는 거미줄 놀이' 등 매주 다른 주제가 펼쳐졌고 아이는 매번 색다른 놀이를 체험할 수 있었다. 여기에 힌트를 얻어 아이가 몰입하고 특별히 재미있어했던 놀이가 있으면 따로 재료를 마련해 집에서도 해주곤 했다.
아이는 1주일에 한 번가는 미술놀이 시간이 가까워지면 "오늘은 또 무슨 놀이를 할까?" 하고 기대할 만큼 이 시간을 좋아했다. 엄마입장에서는 아이가 다양한 놀이를 즐겁게 참여해서 좋고, 놀이를 준비하고 치우는 수고를 덜 수 있어서도 좋았다. 미술놀이만큼은 매주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아이랑 집에서 부글부글 화산 폭발놀이를 한지 한 달쯤 지났을까. 미술놀이 주제로 '공룡나라에 화산이 폭발했어요'가 나왔다. 찰흙으로 공룡 집도 만들고 화산도 만들고 공룡알도 만들어 꾸민 다음, 찰흙으로 만든 화산 안에 베이킹소다와 구연산 가루를 넣고 물감을 섞은 물을 뿌리면 거품이 보글보글, 부글부글 하고 올라와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연출이 되었다.
아이는 집에서 한 베이킹소다 놀이가 생각났는지 "이거, 이거, 어제 했었지?" 하고 되묻는다. (31개월 아이는 과거를 모두 '어제'라고 표현한다.) "응응, 전에 엄마랑 집에서 부글부글 거품놀이 했었지, 우와~ 공룡 옆에 화산이 폭발했네. 뜨거워! 위험해~" 하며 놀이에 동참했다.
아이는 선생님에게 마법의 가루와 빨간 물약을 더 달라고 요청하고 여러번 화산을 폭발시키며 즐거워했다. 놀이에 집중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큼 흐뭇한 것도 없을 것이다. (밥 잘먹는 것과 잘 자는 것은 제외하고.)
놀이를 하면 할 수록 아이의 집중력과 관찰력이 높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만큼 아이가 잘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성장하는 아이와 함께 잘 놀 수 있는 엄마로 성장하는 것. 아이의 발달과정에 맞는 적절한 자극과 경험을 제공하는 것.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록 이루고 싶은 소망이 늘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