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울고 싶어
아이는 밤에 잠을 자려하지 않았다. 분명히 졸린데도 자지 않으려고 울었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무래도 어린이집 상담에 같이 데려갔더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모양이다. 아니면 이것이 재접근기인가..겨우 어르고 달래 잠을 재웠는데 새벽 3시 20분, 아이가 우두커니 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새벽에 아이가 울었고, 방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자는 공간이 다시 싫어진건가, 또 다시 어르고 달래 아이를 재웠다. 다행히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렇게 새벽 4시. 2시간이 지나면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이 워킹맘의 삶일까.. ㅎㅎ 웃음만 나오네.
업무가 쌓이기 시작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고 미팅이 없는 날을 고르고 골라 지난주에 연차를 썼고, 어린이집 상담으로 어제 갑자기 반차를 쓰게 되었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겠다. 아이를 낳기 전이라면 내 시간을 기꺼이 할애해서 잔업을 했겠지만, 지금은 정시 퇴근을 해도 항상 늦는다. 무엇에 늦는지는 모르겠다. 아이와 같이 보낼 시간이 부족해서 늦는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화장실에 갈 틈도 없이 불편한 마음으로 30분의 잔업을 마치고 부리나케 퇴근을 했다.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그것도 못했는데, 의 업무는 또 다시 쌓이고 불편한 마음은 회사 엘베를 타는 그 순간부터 잊어버린다. 날아가버린다. 우선순위가 뒤바뀐다. 목줄을 찍고 회사를 나서는 그 순간부터는 쌓인 업무는 뒤켠이 되었고, 집으로 가는 숏컷을 찾는다. 여기서 몇 분차를 타면 대화행을 탈 수 있겠네 혹은 먼저 오는 구파발행을 타고 대화행을 타면 또 얼마나 늦으려나, 시간을 계산한다. 출근은 도어 투 도어로 1시간 내에 도착 가능하지만 퇴근은 그렇지 않다. 5분 10분이 늦을수록 지하철은 인산인해로 가득하다. 좀처럼 발을 디딜틈이 없고 사람들은 그래서 예민해지고 밀고 부대끼며 집까지 간다. 날이 추워져서 두꺼운 외투를 입었는데 이조차도 민폐다. 부피 큰 옷 때문에 뒷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과 조금도 양보할 틈을 허락하지 않는 밀도 높은 지하철 내의 치열한 기싸움덕에 짜증과 분노가 함께 치민다. 라지만 이 또한 지하철에서 내리면 금방 잊어버릴 감정이다. 호다닥 집으로 걸어간다 혹은 마을버스를 탄다. 집에 도착했다고 한숨을 돌릴 틈은 없다. 옷을 갈아입을 여유는 사치다. 손을 겨우 씻고 아이와 하이톤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럼 곧 자야할 시간.
오늘은 아이가 욕조에 넣으려는 순간부터 울었다. 어디가 아픈 건지 걱정이 되어서 물 밖으로 꺼내서 일단 옷을 입히는 걸로 1차 후퇴. 아이는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숨이 넘어가게 꺼이꺼이 울었다. 정말 아이가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이 되었다. 이 시간에 갈 수 있는 응급실을 찾아봐야하나 싶을 정도였다. 이럴 때 아이에게 어쩔까? 저쩔까? 어디가 아파 등등의 말을 많이 건내는 건 무의미하다. 화제 전환 시킬 것을 찾아 잠자코 기다려주면 아이는 금방 전환된 화제에 흥미를 갖는다. 우는 걸 잊어버린다. 다시 어디가 아픈지 살펴보았는데 괜찮아보였다. 다행이었다. 정신이 혼미하다.
다시 울기 전으로 돌아온 아이를 데려다가 씻기려고 했는데 이번엔 씻기기도 전에 울기 시작했다. 와 오늘 좀 고난이도네? 어거지로 씻겼다. 이렇게 씻겨야 하나 싶긴 한데 씻겨야 한다. 안그러면 자얀다는 걸 자꾸 부정하고 졸음이 그득그득한데도 놀려고 한다. 초치기로 씻겨 머리를 말리고(이런날은 또 머리카락이 안마르지) 다시 옷을 입혀 진정을 시켰다. 또 다시 화제를 전환했다. 이제야 자려는 의지가 생겼는지 코잘까에 잠자코 따라 온다. 아이는 이내 잠이 들었다. 그래 피곤할만도 하다. 이렇게 금방 잠이 들 만도 해. 근데 오늘은 유난히 꺼이꺼이 울었니, 엄마는 너무 궁금하다. 무엇이 너를 그토록 서럽게 한 건지 엄마는 너무 알고 싶어.
그치만 전처럼 한숨이 나거나 화가 나진 않는다(이앓이라는 걸 모르고 새벽마다 울때는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너도 너만의 이유가 있겠지. 다만 엄마가 그것까지 알아주지 않아서 서운할 수도 있겠다. 싶다. 이렇게 조금씩 인내가 생기는 걸까 ㅎㅎㅎ 웃음만 나오네
나를 살필 시간이 없었다. 출퇴근에 오며가며 보는 드라마가 작은 행복이고 기쁨이다. 얼마전에 결재한 이북리더기가 나의 설렘이었다. 가끔 거울속의 나는 너무 못나서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다. 그래도 봐줄만한 때가 있었던거 같은데, 그렇다고 슬프진 않다. 그냥 꼴보기 싫은거지(...???)
나는 오늘 어떠했는지 곰씹을 시간이 없다. 이렇게 앉아서 이걸 쓰는 지금도 죄다 사건의 나열뿐이지 않는가. 일정내에 업무를 처리하지 못해서 나 자신에게 화가났고, 근데 그걸 또 금방 잊을만큼 육아가 빡셌고 내일은 팀 회식이라 아이를 저녁에 보지 못하는 것이 걱정이기도 하다. 팀 사람들과 점심 먹는 게 생각보다 즐겁지 않고 그 시간 마저도 애를 써야 해서 혼자 먹고 싶을 지경이다. 곧 혼점을 할 형국이로군.
아이가 잠이 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가도 씻고 자려고 하면 오늘 뭐라도 있었는지 기록이라도 해야겠다는 의무감에 자리에 앉았다. 습관이 되면 사건의 나열에서 나아가 내 마음이 어떠했다고 기술할 수 있는 날도 오겠지. 그 때까지 하루하루 잘 써보자!